2024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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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사제가 쓰는 병영일기] 삼손과 40일

예수님의 광야 체험처럼 진정한 삶의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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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신병교육대 성당에서 재치 있게 말하는 병사 신자로 인해 한바탕 웃은 일이 있었다. 보통 미사를 드리고 난 뒤 고해성사를 원하는 병사들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말한다. 그러면 고해성사를 청하는 신자 병사들이 더러 있다. 그 날도 네댓 명의 신자 병사들이 성사를 청했다. 성사 후에 꼭 세례명을 물어보는데 한 병사가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저는 삼손입니다.” “그런데 전 힘이 없습니다.”

“무슨 말이고?”

“보시다시피, 전 머리카락이 없지 않습니까?”

“아! 구약 성경에 나오는 그 삼손이 되었단 말이지! 하하하!”

자신의 세례명은 삼손이고, 또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구약에 나오는 삼손 판관처럼 머리카락이 없는 자신은 힘이 없다는 것이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 젊은 장정들은 모두 나름 숫사자의 갈기 머리처럼 멋지게 해 다닌다. 입영 통지서를 받고 입영 전날 친구들과 함께 아쉬움을 달래며 술잔을 돌리기도 하고, 또 함께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깎는다. 모두들 군대라는 곳으로 마치 출가라도 하듯 맨머리가 되면 시원섭섭함과 아쉬움 때문에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을 한다. 머리카락을 깎인 심정이야 오죽하랴!

오늘도 군대 입대하는 젊은 장정들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육군 훈련소, 102보충대, 306보충대로 향한다. 민간인 신분에서 군인의 신분으로 변화되는 첫 걸음으로 머리를 깎는다. 성당에 돌아와서 삼손이라는 그 병사를 생각하는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속에서 올라왔다. 깎인 머리카락과 머리는 단순히 외적인 상태 변화만을 보여 주는 것일까? 부모 슬하를 떠나고, 친한 친구와도 이별을 하며, 발걸음을 집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발길을 내딛어야 하는 그들은 머리 깎인 삼손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힘 좋은(?) 소년으로 살다가, 이젠 제대로 힘 한 번 쓰기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닐까? 소년의 힘이 아니라 청년의 힘으로 성장하기 위해, 치열한 통과의례를 치르는 것은 아닐까?

군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한 젊은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민간인->장정->훈련병->이등병으로 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젊은 청년의 진정한 에너지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삶에 필요한 참다운 힘이 커나가는 것이 아닐까? 혹 이러한 통과의례가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축복은 또 아닐까?

구약에 나오는 삼손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뭔가가 그의 몸에, 팔에, 머리에 있었다. 그러나 삼손은 너무나 어이없게, 또 어설프게도 자신의 비밀을 말해 버린다. 힘의 원천에 대한 노출은 그에게 큰 시련을 주었다. 두 눈을 잃어버린 그는 자신의 팔에서, 몸에서 자신도 평범한 한 인간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말하자면 일종의 무기력에 관한 체험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그의 체험은 성숙을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의 시련이 단순히 시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도 바오로에게도 과거 사울이라는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에게도 앞을 보지 못하는 시련은 있었으나, 영적인 혜안이 열려 예수님을 만나 뵙는 결정적인 체험을 한다. 이 체험은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켜 다른 사람으로, 곧 박해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했다.

“힘이 없습니다. 신부님!” 소위 문제 병사, 부적응 병사, 고문관 병사들을 만나 상담을 하다보면 군종신부들은 그들의 눈과 행동 속에서 새로 태어나게 될 그들의 삶의 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훈련병 시절은 약 40일 가량 된다. 이때 군종신부들은 삼손처럼 머리를 깎은 그들의 삶 속에서 새로운 비전을 꿈꾼다. 세례성사를 통해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통과의례를 거친다. 즉 성사를 통해 그들은 새로운 젊은이가 된다. 정말이지 놀라운 변화다. 매주일 군인 성당에서는 젊은이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새로운 노래를 온 몸으로 부른다.

오늘도 머리를 깎은 삼손들은 40일간을 예수님의 광야 체험처럼 진정한 삶의 목표를 향해 행군도 하고, 땅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포복도 하고, 각개전투도 벌인다. 힘든 하루하루지만, 삶의 과정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충만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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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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