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프란치스코, 馬海松, 1905~1966)은 자신이 사는 마을을 ‘코끼리 우는 마을’이라 불렀다. 명륜동에 살았는데 창경원 뒷담 밑이라 새벽이면 코끼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 창경원에는 동물원이 있었다. 마해송의 집은 터가 30평, 건평이 13평, 그리고 다섯 평쯤 되는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 박을 길렀다. 밤에 하얗게 피는 박꽃이 좋았다. 하늘에서 백로는 춤을 추고, 새들은 추녀 끝에서 노래했다. 대문 밖에서 보면 보잘것없는 집 같으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늑했다. 안방에는 아내와 딸, 건넌방은 마해송, 아랫방에는 아들 둘이 살았다. 마해송의 방은 온돌방인데 사방탁자와 문갑이 있고, 교자상 같은 책상과 글 쓰는 작은 소반이 있었다. 책상에는 늘 많은 책이 있었다. 밝은 곳에서 글을 읽고 써야 했기에 이동에 편리한 작은 소반을 사용했다. 머리맡에는 오래된 라디오를 두었다. 글을 쓸 때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그가 가장 사랑한 음악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이외에도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대공),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3중주, 드뷔시의 영상집을 좋아했다. 재떨이는 청동화로 모양의 놋재떨이를 썼다.
아내가 임신하고 출산을 앞두자 마해송은 방에 들어가 순산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방 한가운데 서서 이쪽저쪽으로 돌아가며 절했다.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에게 향해서 하는 절이 아니었다. 그저 두루두루 돌아가면서 절을 했다. 둘째 아들을 낳을 때도, 딸을 낳을 때도, 딸이 육십일 되는 날도 그리고 미군 폭격기 B-29의 폭격을 각오하면서 가족을 귀국시킨 밤에도 그렇게 절했다.
종소리 따라 성당에 간 아내
6·25 전쟁 때 마해송은 국방부 정훈국 편집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후방 각지를 돌아다녔다. 한번은 지프를 타고 가다가 커브에서 차가 굴러 운전병이 즉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죽을 뻔한 것이다. 마산으로 피난 간 부인에게서 편지가 왔다. “…어제 해 질 때는 성당에 갔어요. 어떻게 그 높은 언덕 위까지 올라갔는지 몰랐어요. 종소리를 따라서 정신없이 올라갔어요.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릎을 꿇고 앉아있으니 가슴 속이 아주 가라앉았어요. 성모님은 아름답고 거룩하고 인자했어요.…” 마해송은 아내에게 ‘성당에 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마해송은 일본에 있을 때 성당에 간 적이 있었다. 일본인 친구 장례 미사에 참여했다.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적었다.
“성당에 들어설 때에 여인들은 머리에 흰 보, 검은 보를 쓰는 것이었고, 한 발 들어서자 마룻바닥에 한편 무릎을 꿇고 절하며 경건히 성호를 긋는 것이 세상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내가 어려서 많이 드나들었던 예배당의 풍속과는 딴판으로 질서가 정연하고 엄숙한 품이 보기에 아름다웠다.… 모든 절차가 엄숙했고 기침 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것 같았다.”
마해송의 부인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세례를 받은 것이다. 마해송은 용기를 내어 가톨릭대학 신학 교수로 있던 최민순 신부를 찾아갔다. 최 신부와는 대구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최 신부는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등의 명저를 번역한 학자 신부였다. 최 신부에게 일 년 동안 교리를 들었다. 마해송은 “교리가 끝나면 세례를 받겠습니다”하고 약속했다. 성경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읽기 시작했고, 최 신부가 준 성인전(聖人傳)도 읽었다.
하느님 사랑을 깨닫다
그러던 어느 주일에 명동대성당에 갔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성호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사도신경 등 교리 공부하면서 익힌 기도문들이 미사 중에 많이 나왔다. 사람들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하는 모습을 본 순간, 갑자기 ‘당신이 정말 나를 오늘 있게 해주신 하느님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해송은 10월 3일 새벽 여섯시에 서울 정릉에 있는 성가수녀원에서 최 신부의 집전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고 성당 밖으로 나오니 성모상이 새롭게 보였다. 그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그날은 마해송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벽’이었다. 아들 마종기는 신앙심이 깊었던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했다. “아버지의 만년 생활은 그 전체가 가톨릭 믿음과 연결되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크리스찬으로, 가톨릭인으로 사셨다.”
아동문학가 박홍근도 마해송의 신앙심을 이렇게 말했다. “선생은 신덕, 망덕, 애덕을 갖춘 철저한 신앙인이었다. 하느님의 존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생전에도 매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냈다. 사도신경 그대로 살았다. 십계명과 가톨릭 교리를 그대로 지키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덕을 닦고 죄를 피했다.”
이렇듯 마해송은 생애의 마지막을 훌륭한 신앙인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신앙생활에 감동을 받은 딸과 아들도 세례를 받았다. 식구 모두가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생각하면 참으로 오랜 세월, 나는 많이도 빌며 살아왔다. 하늘에도 빌었다. 땅에도 빌었다. 달님에게도 빌었고, 별님에게도 빌었다. 바윗돌에도 빌었고 대감님에게도 빌었다.” 이렇듯 마해송은 오랜 세월을 여기저기에 빌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느님께만 비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신앙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래알 고금’과 ‘비둘기가 돌아오면’이 그의 신앙이 담긴 작품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눈물
피난 시절, 주인집에서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 마종기는 배달온 신문을 주인이 없을 때 마당에서 읽고 자기네 방 툇마루에 올려놓았다. 그날 저녁에 주인집 아주머니가 마종기를 큰 소리로 불렀다. 신문을 읽고 어디에 두었냐고 물었다. 아들은 집안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주인집에 사과하고는 아들을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는 무자비하게 때렸다. 뺨도 때리고, 다리도 때렸다. 이리저리 피하는 것을 따라가면서도 때렸다. 마해송은 아들을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렸는지 후에 「너를 때리고」라는 수필에 자세히 썼다. 마해송은 아들을 때리고 나서 훈계했다. 아들은 옷에 묻은 흙을 털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또 이런 일화도 있다. 피난 시절, 마종기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대구 약전골 방 한 칸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날, 마해송은 원고료를 많이 받았다고 하며 아들에게 한턱을 내겠다고 했다. 아들은 짜장면을 먹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데리고 간 곳은 ‘르네상스’라는 고전음악 다방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사주었다. 우유를 마시며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었다. 지금도 그 곡을 들으면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서양화가 장욱진은 명륜동에 살았다. 그는 매일 새벽 산책을 했다. 산책 코스 중 한 곳인 혜화동 로터리 길에서 한 사람을 늘 만났다. 그는 언제나 검은색 안경을 똑바로 쓰고, 밤색 점퍼, 검은 베레모 그리고 지팡이를 손에 쥔 단아한 모습을 했다. 그리고 작은 강아지가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몇 번 그냥 지나쳤지만, 새벽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매일 만나게 되어 장욱진이 먼저 인사를 했다. 바로 그 사람이 마해송이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같은 생각으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다. 장욱진은 마해송의 동화를 좋아했다. 마해송 역시 장욱진의 그림을 좋아했다. 어느 날, 장욱진은 마해송이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장욱진은 슬펐다. 마해송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에는 함성을 지르는 꼬마와 동네를 슬슬 산책하는 강아지가 있고, 하늘에는 해와 달이 친구처럼 떠 있다. 그리고 검은 색안경을 쓴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참고자료 : ▲마해송. 아름다운 새벽. 문학과사상사. 2015. ▲마해송. 전진과 인생. 문학과사상사. 2015. ▲마종기. 아버지 마해송. 정우사. 2005. ▲마종기.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문학과지성사. 1980. ▲마종기. 우리 얼마나 함께. 달. 2013. ▲장욱진. 강가의 아틀리에. 열화당. 2017. ▲조선일보. ‘[최홍렬 기자의 진심] 50년 만의 옛집 툇마루… 의사 詩人 눈물이 그렁그렁’(20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