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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같은 ‘하숙생’으로 대중가요사에 이름을 남긴 최희준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35) 최희준 티모테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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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이 2007년 12월 10일 명동대성당 소성당에서 마련한 가톨릭 문화예술인 성탄 미사에서 최희준씨가 정진석 추기경의 애창곡 ‘하숙생’을 열창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정진석 추기경의 애창곡

정진석 추기경은 명동대성당에서 ‘인생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하기 전에 ‘하숙생’ 노래를 불렀다. 그전에도 가톨릭문화예술인과 미사를 봉헌한 후에 가진 행사에서도 ‘하숙생’을 불렀다. 정 추기경은 좀처럼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하숙생’만은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노래했다. ‘하숙생’은 정 추기경의 애창곡이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하숙생)



히트곡 ‘하숙생’

최희준(티모테오, 崔喜準, 1936-2018)은 이 노래를 불러 크게 히트했다. ‘하숙생’은 KBS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였다. 드라마 내용은 이렇다. 젊은 화학도와 미모의 여인이 서로 사랑했다. 그는 약혼 기념으로 ‘하숙생’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는 아코디언을 매우 잘 연주했다.

어느 날, 그가 일하는 실험실로 그녀가 놀러 왔다. 실수로 화재가 발생했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서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해냈다. 그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얼굴은 흉측해졌다. 후에 그녀는 미스코리아가 되었다. 그녀는 그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그는 복수하려고 성형수술을 했다. 그러고는 그녀가 사는 옆집에 하숙했다. 밤마다 아코디언으로 ‘하숙생’을 구슬프게 연주했다. 그는 그녀가 미치는 것이 보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미치고 만다. 이 드라마 극본을 쓴 작가는 공주 동학사 쓰레기장에서 여성의 머리카락 다발을 발견했다. 그 머리카락은 여승이 되기 위해 절에서 자른 것이었다. 거기서 영감을 얻어 ‘하숙생’이란 드라마를 쓴 것이다.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노래가 편안히 와 닿는다. 한 대중예술평론가는 이를 ‘이지리스닝(easy-listening)’이라 했다. ‘하숙생’의 가사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철학과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있어 많은 사람이 불렀고 지금도 부르고 있다. 법정 스님도 인도를 장기간 여행하면서 고국의 산천과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면 ‘하숙생’을 불렀고, 송광사 불일암에서 소소한 일을 하면서도 ‘하숙생’을 불렀다. ‘하숙생’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신성일과 김지미(체칠리아)가 주인공이었다. 김지미는 이 영화로 자카르타 아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최희준이 국회의원으로 일할 때 보좌진으로 있던 사람도 ‘하숙생’ 작사가였다. 이렇듯 ‘하숙생’은 최희준의 ‘운명’이었다.

최희준은 ‘가요무대’를 독주해 나갔다. ‘진고개 신사’, ‘맨발의 청춘’, ‘빛과 그림자’, ‘하숙생’, ‘종점’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이외에도 ‘나는 곰이다’, ‘뜨거운 안녕’, ‘팔도강산’,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도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미련 없이 내뿜는 담배 연기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그 여인의 얼굴”로 시작하는 ‘진고개 신사’는 MBC 라디오 개국 특집 드라마 주제곡이었다. 그리고 “눈물도 한숨도 나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로 시작하는 ‘맨발의 청춘’도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 영화 덕에 크게 히트했다. 영화는 고아 건달과 양갓집 규수의 비련을 담았다. 특히 “사랑만은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마라” 이 노래 가사는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인기였다. 최희준은 이 주제가로 최고의 남자 가수가 되었다.

또한 ‘팔도강산’도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배우들이 총출연한 영화 ‘팔도강산’(김희갑, 황정순, 김승호, 김진규, 최은희, 박노식, 허장강, 고은아, 신영균 등) 덕에 크게 히트했다. ‘팔도강산’은 계몽 영화라 어린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많은 사람이 관람했다. 이렇듯 최희준의 노래는 영화와 드라마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곰이다’가 히트하자 대웅제약에서 곰의 쓸개가 원료인 ‘우루사’ 광고 출연을 최희준에게 의뢰해와 광고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학사 가수 물결의 시작

영화배우 신성일은 ‘맨발의 청춘’, ‘하숙생’, ‘종점’에 출연했다. 이 영화들의 주제곡은 모두 최희준이 불렀다. 영화는 주제곡으로 더욱 빛났다. 최희준은 신성일과 단짝이었다. 매년 명절마다 지방 극장 쇼에 함께 다녔다. 신성일이 무대에 서서 인사하면 최희준은 노래를 불렀다. 신성일은 최희준을 “성격이 착한 그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정감 넘치는 사람이었으며, 함께 있으면 어디든 편했다”고 했다.

1960년대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미8군 무대 출신 음악인들이 선도했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한명숙을 비롯해 현미, 패티 김, 이금희, 위키 리, 유주용, 박형준, 최희준 등이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최희준은 위키 리, 유주용, 박형준과 함께 밝고 건강한 홈 가요 보급을 위해 ‘포클로버스’라는 밴드를 조직해 활동했다. 또한 가요계에 고학력 바람을 다른 음악인들과 함께 일으키기도 했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작곡가 박춘석, 고려대 법대 출신의 가수 김상희, 서울대 치대 학력의 작곡가 길옥윤 그리고 서울대 법대 출신의 최희준이 바로 주인공들이었다. 그때부터 ‘학사 가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가수 최희준을 인정하지 않은 아버지

최희준이 중학교 3학년 때 6·25 전쟁이 일어났다. 수원에서 피난민 종합학교에 다니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 경복고에 복학해 졸업했다. 그러고는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법대를 택한 것은 순전히 부친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최희준은 상대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부친은 ‘판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법대 입학원서를 직접 들고 왔다. 최희준은 그러한 부친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고 가수로 방향을 돌렸다.

어느 날, 신문에 ‘대기만성형 학사 가수 최희준’이란 기사가 크게 나왔다. 부친이 그 기사를 보았다. 그러고는 아들에게 “저 가수가 바로 너지?”라고 물었다. 최희준은 ‘네’라고 대답했다. 그 일로 부친은 아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부친은 아들이 가수로 성공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최희준은 이를 평생토록 가슴 아파했다.

최희준은 서울대 축제에서 프랑스 샹송 ‘고엽’을 불렀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친구들이 미8군 클럽 악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권유로 오디션에 참가했다. 합격했다. 당시 미8군 클럽 오디션에 합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최희준은 그곳에서 미국 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 그 목소리가 마치 벨벳 같아 ‘한국의 냇 킹 콜’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후에 냇 킹 콜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함께 만나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 후,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로 첫 음반을 내며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최희준의 노래를 듣고 가수가 된 사람이 있다. 최백호다. 최백호는 고등학교 때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그 노래가 무척이나 좋았다고 했다. 그 노래가 바로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었다. 최백호는 그때 가수가 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최희준과 냇킹 콜

이름과 별명

최희준의 원래 이름은 최성준이다. 최희준이 라디오에서 처음 방송하는 날 라디오를 즐겨듣는 부친이 놀랄 것 같아 걱정됐다. 부친은 몸이 편찮아서 자리에 누워 라디오를 매일 듣고 있었다. 이러한 걱정을 방송국 사람들에게 했다. 그러자 KBS 악단장 김인배와 음악 PD 송영수, 지휘자 김강섭이 이름을 ‘희준’으로 지어주었다. 작곡가 손석우도 ‘喜準’이라는 한자 이름을 주었다. ‘항상 웃음을 잃지 말자’라는 뜻에서 이름에 기쁠 ‘喜’를 넣어주었다. 라디오에서는 최성준의 이름이 최희준으로 나갔다. ‘희준’을 계속해서 예명으로 사용하다가 정식으로 개명 절차를 거쳐 본명으로 정해버렸다.

최희준의 별명은 ‘찐빵’이다. 찐빵이 된 사연이 재밌다. 희극배우인 구봉서가 무대에 선 최희준의 모습을 보았는데 조명의 열기로 짧은 머리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왔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치 찐빵 같다”고 한 것이 그만 애칭으로 굳어졌다. 찐빵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방 쇼 행사 대기실에서 최희준은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최희준의 얼굴은 둥글넓적한데 그 얼굴을 배경으로 막 배달온 짜장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그 묘한 광경을 보고 어떤 사람이 “찐빵 같다”고 했다. 그래서 ‘찐빵’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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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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