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백성으로 어찌 눈 감고 귀 닫고 모른 척 지낼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왜 제 기도에 한마디 대답도 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신부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허나 국가와 애국심에 관한 문제는 다릅니다. 이는 숙명입니다. 저는 떠나겠습니다 신부님.”
안중근(토마스) 의사에게 세례를 주고, 마지막 고해성사를 집전한 빌렘 신부. 빌렘 신부의 목소리로 전하는 인간 안중근의 삶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서울가톨릭연극협회(회장 최주봉 요셉, 담당 유환민 마르첼리노 신부)는 10월 6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음악극 ‘안중근의 고백(Go Back)’ 초연을 올리고 전국투어 공연을 하고 있다.
뤼순 감옥에 갇힌 안중근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영적 아버지 빌렘 신부를 찾는다. 뮈텔 주교가 빌렘 신부의 뤼순행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빌렘 신부는 여정을 강행하고 안중근이 이 땅에서 봉헌하는 최후의 미사에 함께한다.
뮈텔 주교의 뜻을 어긴 빌렘 신부는 60일간 성무집행정지 처분을 받는다. 빌렘 신부가 처분받는 자리가 곧 무대다. 내레이터가 된 그의 입을 통해 인간 안중근의 면면을 보는 흐름이다. 극에서 안중근의 삶은 14개 장면으로 구성됐다. 배우 14명이 성별과 나이 상관없이 안중근 역할을 하는 독특한 연출이 돋보인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치려는 나, 가족과의 이별이 두려운 나…. 다인일역은 인간 안중근의 여러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이며 최후 진술 장면에서 특히 진가를 발휘한다.
노래는 안중근의 삶과 연관되는 성경 속 이야기를 찾아 가사로 엮어내 흥미롭다. 가사에 입힌 음악도 작품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작곡을 맡은 미하엘 슈타우다허 음악 감독은 “관객들이 안 의사가 처했던 상황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번 음악극은 빌렘 신부가 쓴 서한을 바탕으로 영웅이 아닌 ‘인간 안중근’을, 살인자가 아닌 국권회복을 위해 행동한 ‘의인 안중근’을 조명한다. 연출을 맡은 민복기(안드레아) 감독은 “고백(Go Back)은 안중근의 고백이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만약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묻는다”며 “누군가에게는 무지렁이처럼 보이는 힘없는 이들 하나하나가 모이면 나라를 지켜내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안 의사의 시복에 힘을 싣고자 하는 뜻도 있다. 민 감독은 “안 의사가 죄인이 아닌 평화의 수호자로 거듭나는데 이 공연이 한 걸음의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10월 15일 울산 현대예술관, 10월 27~29일 대구 주교좌범어대성당 드망즈홀, 11월 4일 안동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러닝 타임 100분.
※문의 02-3789-7702 서울가톨릭연극협회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