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라는 단어에서 시옷을 삼각형으로 표현하고 미음을 물결 모양으로 그려도 우리는 본래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 한글은 자모음 형태를 변형해도 단어가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점·선·면으로 이뤄진 한글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며 성경 말씀을 창의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명동 1898갤러리에서 10월 27일까지 열리는 오태미(나탈리아) 작가 개인전 ‘말씀그림 153’이다.
만화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오 작가는 코로나19로 미사가 중단된 2020년, 성체를 영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채우고 하느님께 그림 선물을 드리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2020년 9월 13일(연중 제24주일)부터 올해 8월 13일(연중 제19주일)까지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복음을 필사하고 가장 마음에 와닿는 단어 혹은 문장을 그렸다. 이를 두고 작가는 “말씀이 품은 소리가 제 마음에 만든 파동, 그 파동이 퍼트리는 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작품들은 오일 파스텔, 색연필, 마카, 아크릴 물감 등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해 알록달록한 색감을 발산한다. 한글 자모음과 함께 교회의 여러 상징물이 그림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다. 글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 구름, 물방울, 별 모양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채워져 있다. 꽃은 불꽃 모양의 혀를, 물방울은 씨앗 등을 표현한 것으로 그림을 보는 잔재미를 더해준다.
오 작가는 3년여 동안 작품 153장을 그리고 이를 오병이어 형태로 조합해 또 하나의 큰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는 “성경에서 153은 물고기를 잡지 못하던 제자들이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잡은 물고기 숫자(요한 21,6-11 참조)”라며 “그것이 제자들에게 주신 선물이었듯, 제게도 이 작품들은 힘들었던 코로나19 시기를 말씀 안에서 극복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성경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해도 말씀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전시의 묘미다.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도,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작가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은 말씀 찾기’를 하며 전시를 즐기시길 바라는 마음”이라면서 “성경 말씀을 빽빽한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가볍고 재밌게 접하면서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