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교황 성하께…” 1811년, 조선 천주교 신자들은 비오 7세 교황에게 교회가 받는 박해 상황을 알리고 성직자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한국 천주교회와 교황청의 인연이 200여 년 전부터 시작됐음을 짐작하게 하는 사료다.
이 같은 편지들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가 교황청과 맺어온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관장 원종현 야고보 신부)이 마련한 대한민국-교황청 수교 60주년 특별기획전 ‘모든 이를 위하여’다.
특별기획전은 우리나라가 교황청과 관계를 맺은 200여 년 전부터 1963년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한 역사 속에서 양국 관계를 조망하고, ‘모든 이를 위하여’ 지향해야 할 공동선을 생각해 보고자 기획됐다. 교황청 국무원 외교부 역사문서고와 복음화부 역사문서고, 국가기록원 등 국내외 기관에서 협조받은 유물과 자료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교황청이라는 세계’는 관람객이 교황청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흥미로운 키워드를 뽑아 교황청 이해를 돕는다. 2부 ‘편지로 잇다: 조선과 교황청’에서는 조선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려는 간절함으로 교황청에 보낸 편지들, 그에 대한 교황청의 응답 ‘조선대목구 설정 소칙서’ 등을 전시한다. 3부 ‘끊임없이 소통하다: 일제강점기 한국과 교황청’에서는 일제강점기에도 관계를 이어간 양국 관계를 엿볼 수 있다. 1925년 로마에서 거행된 한국 순교자 시복식, 1942년 비오 12세 교황이 노기남 신부를 경성대목구장으로 임명한 기록과 주교 서품 사진 등이 전시됐다. 4부 ‘해방 이후 대한민국과 교황청’은 우리나라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정식으로 승인받는데 교황청의 간접적인 지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전시다. 비오 12세 교황이 무주지같이 여겨지던 한국에 1947년 패트릭 번 신부를 초대 교황사절로 파견한 기록과 1948년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 대한민국 수석대표로 참여한 장면(요한) 박사가 소지했던 외교관 여권 1호(유엔과 교황청 파견 대한민국 대통령 특사)를 볼 수 있다.
김안나(안나) 학예실장은 “200년 넘는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에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를 보내준 교황청과의 이야기를 전시로 준비하며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신자분들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감동을 얻고 가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전시를 쉬우면서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 매체를 활용한 전시 공간이 돋보인다. 무료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모든 이를 위한 나의 소망을 카드에 적어보는 ‘모든 이를 위한 나의 이야기’, 버튼을 누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가 출력되는 ‘모든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프란치스코 교황 어록’ 코너가 있다. 전시는 12월 24일까지.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