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요즘을 ‘무한경쟁의 시대’,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정서적으로 메말라갈 수밖에 없는데요.
시인이 보는 세상은 과연 어떨까요?
지난 8월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에 글을 써서 더 친숙한 이름이죠?
김재홍 사도요한 시인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에 한달간 글을 연재하셨습니다. 그래서 서울대교구 신자들에게는 이미 유명인사가 아닌가 싶은데요. 주보 글 연재는 어떻게 하시게 됐나요?
▶한 마디로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아직 신앙생활이 일천한 제가 감히 서울대교구의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보는 지면에 어쭙잖은 글을 싣게 된 것입니다.
지난 연초 교구 문화홍보국 수녀님께서 전화를 주시어 글을 써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 순간 저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일었습니다.
하나는 “내가? 감히?” 하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글이 발표된 다음에 얻게 될 세속적인 유명세였습니다. 두 가지 모두 제가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말하고 있었습니다만, 저는 결국 쓰고 말았습니다.
늦된 신앙인의 내면을 솔직하게 고백하면 되지 않을까, 알량한 마음으로 청탁을 고사했을 때 문화홍보국의 사무 처리에 부담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8월 한 달간 4편의 글을 실었습니다. 물론 저의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는 일종의 고백 같은 것이었습니다.
뒤늦은 나이에 어떻게 하느님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가, 세례에 이어 견진까지 받는 과정, 그로부터 교계의 몇몇 단체에 속해 봉사하면서 느꼈던 소회, 회사를 나와 불안한 일상을 살면서 쉬지 않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사정 등을 모두 고백하였습니다.
고백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비록 공중의 지면이긴 했지만, 저로 인하여 단 한 분이라도 신앙생활에 용기를 낼 수 있다면 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저는 시인으로서 이미 4권의 시집을 내었고 등단 후 20년 동안 꾸준히 작품 발표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문자와 전화로 격려를 받았습니다. <서울주보>는 한 마디로 엄청난 매체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앞으로 더욱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면을 통해 하느님께 고백한 대로,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졸편을 읽어주신 대로 그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 예비신자 교리반이 운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교리 신청을 하셨다면서요?
▶ 어쩌다 <서울주보>의 귀중한 지면을 얻게 되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의 신앙생활은 일천 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느 날 회사 인터넷 게시판에 예비자 교리반을 개설한다는 공고가 올랐습니다. 전시?공연을 담당하는 프로듀서로 일하다 홍보국으로 옮겨 바쁘게 일하던 때였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때였기에 마음 한구석은 스트레스로 시달리고 있던 때기도 했고, 또 아내와 아이들을 비롯해 집안의 가톨릭 문화 속에서 기회가 오면 세례를 받아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쾌재를 외치며 응답했습니다.
사실 저의 청년기는 80년대 후반으로, 대학 때는 꽤나 열심히 시위에 참여하며 과학적 공산주의니 뭐니 아주 열렬한 행동가에 무신론자로 살았었습니다. 세상은 ‘믿음’으로 바뀌지는 않으며,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노력으로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속좁은 단견이며, 깊디깊은 세상의 비의를 깨우치고 그것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몫이 아니라는 자각에 이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세파를 겪으면서,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겨우겨우 조금씩 저는 믿음을 필요로 하는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갔습니다. 그러던 때에 교리반 개설 공지가 떴던 것입니다.
그렇게 교리 공부를 받고, 세계를 받고, 내처 견진성사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늦은 만큼 열심한 신앙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살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 가톨릭독서아카데미, 그리고 지난해 시그니스 총회 등 봉사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진정한 봉사자는 봉사를 말하지 않아야 할 텐데요. 이 또한 부끄러운 말씀이 되겠습니다.
신자가 되고나서 하느님 은총을 느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간 몇 가지 작은 일을 거들어 왔습니다.
우선 몸담고 있던 회사가 언론사였던 탓에 가톨릭언론인들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 사무국장으로 2년, 가톨릭독서아카데미 사무국장으로 4년 동안 일했습니다.
한국평협이 발간하는 『평신도』지 편집장을 2년 동안 맡았고, 현재는 거기 기획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2주에 한 번은 명동밥집에 나가고 있구요. 지난해 서강대 일원에서 열린 세계 가톨릭 커뮤니케이터들의 행사인 시그니스 세계총회 때는 실무위원도 했었습니다.
봉사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실 것 같은데, 작디작은 일로 그때마다 너무나 큰 행복을 누리기 때문에 임하는 것일 뿐입니다.
▷ 최근에 에세이집 『너를 생각하고 사랑하고』를 펴내셨지요? 어떤 책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 맞습니다. 최근에 난생 처음 에세이집이란 걸 내게 되었습니다. 시인이 되고나서 오만하게도 “영화는 예술 아니고, 소설은 문학 아니다”라며 고집을 부리던 제가 부끄럽게도 에세이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거창한 점부터 말씀드리자면, 늦된 신앙인이 되어 죄를 고백하고 또 고백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저의 후배들인 청년들이 저와 같은 행로를 걷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썼습니다.
솔직한 말씀으로는, 시집이라야 아무리 빼어난 것도 초판을 다 팔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터에 그래도 읽기가 수월한 에세이집이라면 조금이나마 더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게 된다면 살림살이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책에 들어간 원고들은 모두 제가 살며 경험하고 실패하고 좌절한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기에 진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1년 동안 10번 넘게 고치고 다듬었습니다. 시(詩)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이별, 고통, 슬픔, 정의와 도전, 결혼 등 청춘들이 겪고 있거나 겪게 될 일들에 대해 저의 솔직한 의견을 적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한 가지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어떤 사안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이겨내게 하고,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너를 생각하고 사랑하고”로 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 출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