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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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2인자 괴링을 속인 위작범 반 미헤렌의 최후

[김주삼의 복원, 미술의 시간을 되돌리다] 12. 위작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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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위작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출처=FAKES & Forgeries, Brian Innes, Reder’s Digest
반 미헤렌 재판 모습. 출처=FAKES & Forgeries, Brian Innes, Reder’s Digest.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초조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반 미헤렌(Van Meegeren)이 재판장의 호명에 따라 일어났다. 잠시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 그림은 가짜입니다! 괴링한테 판매한 베르메르의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은 진품이 아니라 제가 그린 위작이란 말입니다.”

그의 폭탄 선언에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고 청중들의 탄식으로 법정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반 미헤렌은 이 발언으로 남은 생애를 감옥에서 마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가 쌓아놓은 부와 사회적 명망은 한순간에 날아가고 파렴치한 위작범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독일의 통치 하에 있던 유럽 국가들은 독일에 부역했던 반역자들을 색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네덜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판정에 오른 반 미헤렌의 죄목은 ‘나치 독일의 권력자인 괴링(Hermann Goering)에게 국가의 최고 보물을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괴링에게 넘긴 그림들이 위작이라고 밝혔음에도 이 작품을 소유한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 했다. 반 미헤렌이 반역죄로 몰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애꿎은 베르메르의 명작들을 위작으로 만들려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반 미헤렌이 지목한 작품들에 대한 위작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고 X-ray 장비 등 당시로선 첨단 과학 기자재까지 동원되었다. 그러나 위작 여부는 쉽게 결정 나지 않았다. 반 미헤렌은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옥중에서 위작을 재현하는 시범까지 보였다. 그의 기상천외한 위작 기법은 또 한 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우선 벼룩시장 등을 통해 베르메르와 동시대인 17세기 작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돌가루로 표면을 갈아내고 베르메르의 기법과 재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17세기 작품처럼 오래되고 균열이 생기도록 당시 신소재인 플라스틱의 일종인 베크라이트와 기름을 물감과 섞었다. 이후 오븐에 일정 시간 구워 자연스러운 균열까지도 만들어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의 위작은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반 미헤렌은 이 그림으로 자신의 실력을 몰라주던 미술계 최고 권위자들을 우롱하고 막대한 부까지 거머쥐었다. 더구나 이 재판 이후 반 미헤렌은 적에게 국가의 보물을 팔아넘긴 반역자에서 오히려 가짜를 팔아 적의 괴수를 골탕먹인 의인으로까지 추앙받게 되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일까? 그는 단순 사기죄로 감형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1년 만에 감옥에서 명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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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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