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은 부활절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고 경건하게 하는 그리스도교의 절기를 말한다. 이 기간 중에 신자들은 매일 성경을 읽고 참회·금식·단식을 병행해야 한다. 가톨릭·개신교·동방 교회는 지내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며, 가톨릭은 재의 수요일부터 성삼일 직전까지다.
사순 시기 구체적인 규정은 종파마다 다르지만 꽤나 엄격하게 지켜져 온 듯하다. 프랑스에서는 이 규정을 어긴 이들을 종종 사형시키기도 했다. 이 고행의 순간에 육류는 엄격하게 제한되었지만, 생선은 허용되었는데, 생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로 생선을 뜻하는 ‘익투스(Ichthus)’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각각의 첫 글자를 따 조합한 말과 같아서 두 개의 겹쳐진 물고기 모양은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암호처럼 쓰였다. 그러나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처럼 삼면이 바다에 접한 몇몇 나라를 빼놓고 생선은 그리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었다.
가톨릭교회의 전례력상 금육일이 116일에 달해 어쩔 수 없이 생선을 먹었지만, 냉장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염장·훈제·건조 방식으로 저장되었던 생선 맛이 그리 좋았을 리 없다. 유럽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잉어와 숭어 요리가 발전된 이유도 양식이 가능한 물고기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한때나마 유럽을 지배할 수 있던 것도 사순절과 금육 기간에 대량으로 염장 청어를 수출한 데 기인한다.
근엄하고 엄격한 사순 시기 직전 마음껏 마시고 먹고 즐기는 기간이 있다. 이때는 고기와 술이 허용되고, 가면이나 화장에 기괴하고 색다른 옷차림을 한 사람이나 대형 인형을 앞세워 거리를 행진했다. 이 광란의 축제를 사육제(謝肉祭, Carnival)라 하며 현대에 와서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확장되었다. 프랑스의 니스 카니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이 유명하다.
작곡가들이 열기와 즐거움이 가득한 사육제에서 영감을 받지 못했을 리 없다. 특히 유명한 슈만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사육제’는 21개의 소품으로, 전체 길이는 30분 정도다. 비범하고 환상적인 창조력이 넘치는 이 작품은 많은 피아니스트의 사랑을 받아왔다.
에프게니 키신이 연주한 슈만의 ‘사육제’
//youtu.be/t1e2TOseohU?si=vWl2P-WBTRYHl89w
생상스가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도 유명하다. 1886년 그가 오스트리아에 머무는 동안 사육제의 음악회를 위해 작곡되었다. 각 동물의 특성을 기가 막히게 살린 특색 있는 음악으로 유명하다. 처음부터 모든 곡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고, 시작은 1871년이었다. 생상스의 ‘사육제’는 특히 청소년과 아이들을 위한 입문 음악으로도 유명하며, 제13곡인 ‘백조’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요요마가 연주하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youtu.be/3qrKjywjo7Q?si=SlHVaP9P3DI3_O2n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