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는 외로운 존재다. 남들보다 앞선 안목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남들과 공유하기는 힘들다.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선지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고독하다. 오늘 루카가 전한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 기도하시는데,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이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즉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다. 베드로는 주님의 다가올 수난을 짐작하지 못하고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초막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예수님 입장에선 안타깝고 서운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적혀 있다.
예수님의 여러 모습 중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위치가 ‘사람의 아들’이라는 면모다. 큰 사명과 다가올 수난을 알면서 계속해서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종종 잊곤 한다. 그 많은 군중과 제자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예수님이 걸어갈 길을 알고 있는 이가 없는 가운데, 혼자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나아가는 그 괴로움을 우리가 어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까.
음악의 선지자들도 예수님과 같은 고통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백안시당했다.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는 시대를 앞선 선구자였지만, 그의 작품에 보인 청중의 분노는 음악사 중 가장 파격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다.
당시 파리는 전 세계의 문화 수도였다. 수많은 화가·소설가·음악가·안무가가 파리로 몰려들었으며, 이들은 한 시대를 상징할 만큼 독특하고 창의적이었으며 매력적이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에게 작곡을 배웠고 파리에서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 줄 수 있는 동료들과 교류했다.
특히 패션계의 초일류 브랜드를 만든 코코 샤넬과 안무가 디아길레프는 그를 인정하고 많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스트라빈스키가 바라보는 음악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미래지향적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1913년 5월 29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불세출의 무용수 니진스키가 안무를, 스트라빈스키가 음악을 담당한 ‘봄의 제전’은 폭탄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이 파격적이고 선동적인 음악은 이전의 조성체계를 부정하고 있으며 원시적인 리듬은 당시의 세련된 음악 문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듯했다.
당시 최고의 작곡가였던 생상스는 이 작품의 첫머리를 듣자마자 “파곳은 저렇게 사용하는 악기가 아니야”라고 외친 후 퇴장하였고 청중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지금 수없이 연주되고 청중의 호응을 얻는 작품의 시작이 이렇게 부정적이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과 미래를 알고 있던 작곡가의 선지자적인 시각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알게 된다. 현재는 발레와 콘서트용 음악이 둘 다 자주 연주되고 있다.
사이몬 래틀의 지휘로 런던 심포니가 연주한 ‘봄의 제전’
//youtu.be/EkwqPJZe8ms?si=qtTLpZYqI43MIMQ-
류재준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