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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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아들의 비유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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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에 전하는 루카의 복음은 오묘하면서도 현대의 감성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며 감정 이입하기 딱 좋은 부분이 많다.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재산을 요구하는 작은아들은 그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탕진한다. 곤궁에 허덕이던 작은아들은 돼지치기를 하며(유다인들이 돼지에 대해 얼마나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고려하면 최악의 처지를 강조하기 위한 비유로 보인다) 죽지 못해 살아가다 문득 제정신이 들어 다시 아버지를 찾아간다.

작은아들은 자신을 품팔이꾼으로 써먹어도 연명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뜻밖에도 그를 가엽게 여기고 환영하며 귀하게 대접한다. 이때 아버지를 모시며 집안의 힘든 일을 다 떠맡고 있던 장남은 집에 들어가는 것도 거부하며 화를 냈다. 그러자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이제껏 자기와 같이 살면서 큰 복락을 누렸다고 나무라면서 아우가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한 기쁨만을 이야기한다.

입장을 바꿔서 만일 우리 가정이 저런 식이라면 누구나 아버지와 작은아들을 손가락질하며 큰아들을 불쌍하게 여길 것이다. 큰아들은 소처럼 일만 하며 가족을 부양한 반면 작은아들은 집안 재산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물려받아 통째로 말아먹었는데, 그럼에도 아버지가 작은아들만을 귀여워하고 감싸 안는다면 누가 좋게 생각하겠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주신 비유는 감성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말씀과 이 부자(父子)의 이야기는 그 진의가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가를 체감하게 한다.

이 부자 간의 이야기는 후대에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다. 그에게 바른말만 하는 막내딸을 버리고 아첨만 일삼는 두 언니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 아버지는 그녀들에게 배신당하고 광야를 헤매게 된다. 사람들이 작은아들만 귀히 여기는 아버지에게 가지는 감정이 좀더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란(1985)’이라는 영화도 이 스토리에서 파생한 작품이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아들들의 분투를 그린 작품인데, 장대한 비주얼과 뛰어난 각색으로 호평받았다. 일본 전통 타악기들과 다양한 리듬이 어우러진 음악도 인상적이다.

란 오피셜 트레일러
//youtu.be/YwP_kXyd-Rw?si=_R7xGM1atGbbSFl9

쇼스타코비치·베를리오즈·드뷔시가 ‘리어왕’을 주제로 음악을 작곡했다. 이 중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영화를 위해 작곡되었는데, 영화는 거의 잊혔지만 그의 음악은 불멸의 레퍼토리로 남아있다. 아스라한 현악기의 융단 같은 서주 사이에서 목관악기의 침울한 멜로디가 속삭이듯 노래한다. 흔히 쇼스타코비치를 폄하하는 쪽은 20세기 음악치곤 지나치게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는 그를 비판하곤 하는데, 이 곡을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통과 혁신의 가장 절묘한 절충이 이 음악이 아닐까 한다.

쇼스타코비치 리어왕 모음곡
//youtu.be/wuQDvIcRDrA?si=bSlcPC0tTMFbd

류재준 작곡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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