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주일 오후 5시 미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면 성가대석에서 들려오는 색다른 미성을 들어봤을 것이다.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은 무지카사크라 소년합창단(담당 이철규 신부)이다. 지난 4월 선종한 서울대교구 차인현 신부가 1986년 창단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명동대성당 범우관 내 연습실을 찾아갔다. 누구냐고 묻는 호기심부터 상관하지 않고 웃고 뛰어다니는 모습까지 영락없는 소년들이다. 하지만 연습이 시작되자 돌변했다. 자세와 눈빛이 바뀌고, 무엇보다 음색이 달라졌다.
지휘자 송현아(클라라)씨는 “‘보이 소프라노’라고 변성기 이전 소년들만이 가진 음색이 있다”며 “굉장히 맑고 편안하고, 높은 음도 쉽게 낼 수 있어서 여느 합창단과는 다른 연주를 선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틴어로 ‘거룩한 음악’이라는 뜻의 무지카사크라(Musica Sacra) 소년합창단은 벨칸토 창법의 종교음악을 지향한다. 빈·파리나무 십자가 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무지카사크라 소년합창단도 국내외 각종 성음악 공연과 자선음악회에 참여했다. 2018년에는 이탈리아 순회공연을 통해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성 베드로 대성전 미사에서 성가를 봉헌하기도 했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중심으로 클래식·팝페라·민요·동요·캐럴 등 다양한 곡을 연주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사정이 달라졌다. 가장 어려운 점은 인원이다. 현재 정단원 9명에 준단원 5명이 전부다. 미사에서 성가를 봉헌하는 주일 낮과 화요일 저녁에 정기연습이 있는데, 거주지 본당이 아닌 만큼 이동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성인보다 바쁜 요즘 어린이들의 일과를 감안하면 매주 참여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해 곧 변성기를 앞둔 합창단 단장 함현서(라파엘)군이 “아쉬움 반, 해방감 반”이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함군은 “일주일에 두 차례 명동대성당에 오다 보니 공부하고 놀 시간이 부족했다”며 “그래도 미사에서 제 노래를 봉헌할 때 어렵게 연습한 보람을 느꼈고, 노래를 좋아하는 동생들과 정도 들고 재미있어 5년을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저학년 단원들은 좀더 천진난만하다. 장세준(바오로, 초3)군은 “미사 드리고 노래하는 게 좋아 합창단 활동을 한다”고 했고, 이민규(다니엘, 초3)군은 “더 많은 친구가 들어와 우리 합창단이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냥 좋아서’ 무언가를 오랫동안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렵게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힘들다는 말을 되뇌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그만큼 채워지는 만족감과 자기만의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소중한 한때를 노래하는 소년들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현재 무지카사크라 소년합창단은 명동대성당 주일 오후 5시 미사 성가를 봉헌하고 있다. 첫째 주와 셋째 주 오후 전례가 시작되는 4시 미사 전(3시 35분)에도 짧은 무대를 마련한다. 세례성사를 받았거나 예비신자인 초등학교 5학년 이하의 남학생은 언제든 지원할 수 있다.
담당 이철규 신부는 “차인현 신부님이 변성기 전 소년들이 낼 수 있는 소리가 하느님의 선물 같아 소년합창단을 귀하게 생각하셨다”며 “그 취지를 살리고, 우리 아이들이 성음악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