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한만옥·정성훈·도현우 신부가 각자의 작품 옆에 서 있다. 오른쪽 벽면에 걸린 두 점은 용하진 신부 작품이다.
축성(祝聖)의 서예가, 심성필성(心聖筆聖) 작품 총서 출판기념전’ 20일 개막
두달간 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사제 네 명의 계주 개인전이 두 달간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개최된다. 바로 ‘
릴레이 주자는 의정부교구 정성훈(안식년)·도현우(교하본당 주임)·한만옥(성사전담)·용하진(제7지구장) 신부다. 이들은 서예가이며 미술품 감정학 박사인 이동천 선생에게 오랜 기간 왕희지·김정희 등 거장들의 필법인 전번필법과 신경필법을 배우고 있다.
개막에 앞서 지난 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들 사제는 ‘서예가 기도와 닿아 있다’고 말했다.
한 신부는 “제가 나이가 가장 많은데,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기도할 때도 분심이 들었다”며 “하지만 붓글씨를 쓰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어 이를 응용해 기도와 수양에도 도움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정 신부 역시 “우리에게 붓글씨는 취미가 아니라 하나의 기도생활”이라며 “준비 없이 끄적이는 게 아니라 서예를 통해 묵상하고 집중하기 때문에 사목할 때에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 신부는 “종교성과 예술성은 상당히 공통된 부분이 많다”며 “미사도 서예도 어떻게 보면 반복되는 작업인데,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면 같은 동작인데도 새로운 의미로 더 깊게 들어가게 된다”고 전했다.
‘축성의 서예가, 심성필성’이라는 제목 역시 종교와 예술의 조화와 연결된다.
도 신부는 “‘심성필성(心聖筆聖)’은 ‘마음이 거룩하면 글씨도 거룩하고, 글씨가 거룩하면 마음도 거룩해진다’는 의미”라며 “우리 자신부터 붓글씨를 통해 축성되기를 바라고 다시 우리를 통해 주변을 축성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동천 선생이 사제인 우리를 ‘축성의 서예가’로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신부는 “가톨릭 신자는 모두 거룩함으로 부르심을 받고, 거룩해진다는 건 우리 모두의 소명”이라며 “글씨가 거룩해진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고, 신앙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우리는 서예라는 도구를 통해 담아내는 것“이라고 설명을 더했다.
「축성의 서예가, 심성필성 작품 총서」는 총 4권으로, 이들 사제가 각각 20개 작품을 붓글씨로 쓰고 묵상하는 글을 더한 책이다. 한 릴레이 전시에서는 정성훈 신부(6.20~29)를 시작으로 도현우(7.4~13)·한만옥(7.18~27)·용하진(8.8~17) 신부의 작품 총 80점이 4회에 걸쳐 소개된다.
이들은 지난해 사순 시기에도 갤러리 1898에서 단체전을 열었다. 그러나 올해는 마치 자기색이 짙어진 아이돌 멤버들이 솔로 활동에 나서듯 개인전으로 돌아섰다. 같은 스승을 둔 만큼 이들의 서체는 닮은 듯 다르다. 자신만의 글씨 안에 각자의 생각도 담았다.
먼저 정 신부는 가톨릭 신앙행위의 핵심을 이루는 미사와 관련된 성경구절과 미사경문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했다. ‘미사성제’부터 ‘아멘’ ‘천주적고양’ 등을 선보인다.
도 신부는 서예 필법을 넘어서는 마음의 수양, 곧 종교성과 예술성의 친밀한 조화로움을 지향하며 작업했다. 시편의 말씀을 중심으로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 ‘노기폐심지목’ 등을 준비했다.
한 신부는 오늘날 심각한 문제인 환경폐해에 직면해 ‘생태적 회개’를 바라며 ‘천지창조’를 주제로 삼았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잘 보존하고 가꾸고, 우리만 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넘겨주자는 의미에서 관련된 작품을 전시한다.
마지막으로 용 신부는 인생에 녹아 있는 수많은 만남 중 삶의 큰 변곡점이 되고 긴 여운을 주는 만남과 그로 인한 변화의 순간을 작품에 담았다. 대표작으로 ‘나는 있는 나다’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쉬자’ 등을 꼽았다.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는 “사제는 말씀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는 이들이며, 그 사명의 수행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될 수 있고, 또한 수행되어야 한다”며 “네 신부님들은 더욱 정진하여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제단 밖에서의 복음 선포에도 더욱 열성적으로 임해주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축성의 서예가들이 선보이는 글씨는 붓을 굴리고 뒤집어서, 즉 붓 전체를 사용해서 나온 모양이라고 한다. 신부들은 서예 대가들의 필법을 알리기 위해 전시마다 개막식에서 붓글씨 시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담은 굿즈도 판매하며, 모든 수익금은 전액 기부할 계획이다. 전시 기간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2-727-2336
네 사제의 작품은 9월 15~20일 일본 도쿄 오즈갤러리에서 열리는 ‘일기일회(一期一會)’전에도 전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