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갈아 찾아오는 무더위와 장대비를 견디다 보니 어느덧 9월을 맞게 됐다. 절기상 입추와 처서도 지났으니 이제 가을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해질 터. 제대로 피서도 다녀오지 못했고 유난히 아쉬운 여름이라면 사진으로나마 위로를 얻어 보자.
박노해 사진전 ‘산빛’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의 분쟁 현장과 지도에도 없는 마을들을 찾아 기록해온 박노해(가스파르) 시인의 사진전 ‘산빛’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겹겹이 펼쳐진 에티오피아의 능선부터 안데스산맥의 가장 깊은 계곡, 화산이 입김을 뿜는 인도네시아 칼데라를 지나 볼리비아의 산골 탄광 마을과 수단 사막에 솟구친 바위산, 파키스탄 고원의 시리도록 눈부신 만년설산까지 시인이 세계의 높고 깊은 곳에서 담아온 장관들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장엄한 풍광들 속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모습도 녹아 있다. 만년설산 봉우리 아래 오랜 세월 다져진 단정한 길과 층층이 일군 계단밭이 있고, 황량한 땅에 나무를 심으며 산을 일으키는 사람과 산 너머 학교에 가는 소녀도 있다. 또 산자락 같은 인생의 굴곡이 새겨진 할머니의 얼굴 등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고 자리를 지켜온 산과 그 품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37점의 사진과 시인의 사유가 담긴 글로 소개된다.
에티오피아의 랄리벨라. 저 산빛처럼ⓒ박노해
페루 안데스 산맥의 친체로 인근. 산은 길을 품고ⓒ박노해
페루의 파타칸차. 안데스 산정의 아이들ⓒ박노해
튀르키예 내 쿠르드지역, 바트만. 양 떼를 몰고 산맥을 넘다ⓒ박노해
시인은 “하늘과 땅 사이에 산이 있고, 산은 두 세계를 잇는 은밀한 안내자면서 모든 것을 품은 위대한 수호자”라며 “산의 품에 깃들기만 하면, 그저 바라보고 그려보기만 하면, 생생지기(生生之氣)의 산빛은 나를 치유하고 일깨우고 다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29일까지 갤러리 휴관일인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79-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