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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눈물’ 조선 천주교 속 짧은 봄날 「신유년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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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영복은 돈으로 사지 않구 통고(痛苦)로 산다 하였네.’(232쪽)

1791년 신해박해에서 1801년 신유박해까지, 조선 천주교의 짧은 봄날은 피와 눈물로 얼룩졌다. 장편소설 「신유년에 핀 꽃」은 그 10여 년 동안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의 내적 풍경을 치밀하게 그려낸 신앙 소설이다. 세 번의 배교 끝에 신앙을 붙든 이존창과, 주문모 신부를 주인공으로 삼아 고난 속에 움튼 신앙의 진실을 되짚는다.


소설은 1790년 밀사 윤유일이 북경에서 ‘조상 제사는 우상 숭배다’라는 주교의 밀지를 가져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1년 뒤, 소위 ‘진산사건’이 일어난다. 양반 윤지충이 어머니 신주를 불태우고 장례를 천주교식으로 치르면서, 사촌 권상연과 함께 참수된다. 또 한양과 양근, 내포와 전주 등지의 신자들이 검거되는 박해의 광경이 펼쳐진다.


주인공 이존창은 박해와 고문, 두려움 속에서 세 차례나 신앙을 버린다. 그의 신앙 여정과 심리 변화를 포착한 작가의 섬세한 묘사는 김연수 소설가의 평처럼, ‘흔들린다는 건 여전히 길을 찾고 있다는 뜻’임을 환기한다. 여기에 사제품을 받기까지의 우여곡절과 조선에서 겪은 박해 상황을 편지 형식으로 생생하게 전하는 주문모 신부의 글은 현장감을 더한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정약종, 최여겸, 이도기, 강완숙, 황사영 등 실제 인물들과 허구의 인물 김원삼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이다. 특히 김원삼은 이존창과 대립하며 서사의 극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소설 후반부에 박해로 스러져간 이들의 삶을 두고, ‘그리스도인이 흘린 피는 교회의 씨앗이기 때문이다’(297쪽)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이 말은 한국 가톨릭의 순교 전통과 오늘의 신앙을 잇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건조한 역사 기록을 다채로운 문장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되살려낸 소설은 갈등과 위기, 회개와 용서가 교차하는 장면들을 비추며, 피를 흘리는 순교의 고통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신앙의 힘을 느끼게 한다. ‘천주가 바라시는 꽃을 피우게. 봄꽃은 묵은 가지에 피고 여름꽃은 새 가지에서 피어나네. 새로 나지 않으면 꽃도 없고 열매도 없네.’(153쪽) 


작품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을 향해 선교의 길을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한국 천주교의 여명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길을 찾아 헤매는 인물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고난을 넘어 부활의 새벽을 갈망한 신앙의 외침은 세속에 걸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의 발걸음과 겹친다. 인간적 연약함과 하느님의 은총이 맞닿는 순간을 묵상하게 한다. 


이영춘 신부(요한 사도·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는 추천의 말에서 “거룩함과 속됨이 섞인 교우촌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은 꽃을 피워내셨다”며, 이 소설이 2025년 ‘희망의 순례자’ 희년과 맞닿아 있음을 강조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의심과 회의 속에서 길을 찾는 과정이 곧 신앙의 길”이라며, 흔들리지만 길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비춰볼 수 있다고 평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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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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