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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빙엔의 힐데가르트 <격자무늬 창으로 비둘기가 나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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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전까지 위대한 여성 작곡가는 거의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여건이 불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음악사를 살펴보면 이런 사회적 제약과 금기를 깨고 이름을 남긴 여성 작곡가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9월 17일에 기념하는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1098~1179)가 대표적인 분입니다. 2012년에 시성되며 교회학자로도 선포된 힐데가르트 성녀는 베네딕도회 수녀원장이었으며, 음악뿐 아니라 신학, 철학, 문학, 미술, 의학, 과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채로운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긴 분입니다. 당대부터 ‘라인 강의 시빌라(Sibyl of the Rhine)’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을 얻었고 교황이나 황제들과 서신을 교류했으며, 여러 곳에 수녀원을 설립하고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힐데가르트 성녀의 이름이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건 음악 때문이었습니다. 직접 작사·작곡한 여러 작품의 연주와 녹음이 이루어지면서 거의 ‘컬트’에 가까운 열풍이 불었죠.



사실 빙엔의 힐데가르트는 역사상 음악 작품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최초의 작곡가이고, 중세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찬가를 남긴 분입니다. 대체로 예술가들이 그 이름을 남기지 않은 ‘무명의 시대’였던 중세에 그토록 많은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남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성녀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녀는 주님을 찬미하고 환시를 기록한 시를 쓰고 곡을 붙인 후에, 편집과 필사 및 삽화 작업도 직접 감독했는데, 그중 여럿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물론 당시 악보는 선율 외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다채롭고 신비롭게 재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빙엔의 힐데가르트가 남긴 교회음악 작품은 모두 모노포니, 즉 ‘단성가’입니다. 말하자면 낭송에 선율을 붙여 노래하는 방식이지요. 단성가는 주기적인 강세 없이 불규칙적인 리듬을 따르지만 노래하거나 듣다 보면 숨을 쉬듯, 강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습니다.


힐데가르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영감과 열정을 불어넣었습니다. 명상하듯 담담하게 흐르다 갑자기 위로 솟구치는 선율은 신비로우면서도 개성적이지요. 성녀는 자신을 ‘하느님 숨결 위의 깃털’이라고 묘사했는데, 음악의 신비로움을 잘 담아낸 표현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덕극인 <미덕의 질서(Ordo Virtutum)>와 아름다운 여러 부속가(Sequentia)를 비롯해 많은 작품이 있지만, 오늘은 그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격자무늬 창으로 비둘기가 나타나고(Columba aspexit)>를 소개할까 합니다.


가사는 성 막시미노가 미사를 드릴 때 봤다는 환영을 소재로 한 것으로, 격자는 그리스도의 자비가 내리는 창문이며 비둘기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시편과 아가, 집회서를 인용한 풍부한 상징으로 주님의 사랑과 제대에서 거행되는 미사 전례를 찬미한 아름다운 곡입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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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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