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는 철저히 시간을 지킬만큼 엄격하지만, 미운 이에게는 벌을 청하는 할아버지 치릴로. 재소자 상담에 헌신하면서 남편 로무알도의 하루를 낱낱이 구체적으로 털어놓는 엄마 로무알다.
「꽤 낙천적인 아이」는 나, 마리아가 가톨릭 3대의 가족 속에서 그들을 탐정처럼 염탐하고 작가처럼 통찰하며 인생과 세상을 배워나가는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최근 ‘가장 힙한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주목받는 원소윤(마리아·대전교구 관저2동본당)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책은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이자 우리 마음을 위로하는 낙천적인 캐릭터, 삶의 서늘한 고됨을 놓치지 않으며 무서운 신예의 출현을 예고하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소설은 가톨릭 전통 가문의 3대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지만, 바탕에는 깊은 상실과 슬픔이 깔린,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9월 4일 가톨릭신문 서울 본사에서 만난 원 작가는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다 쓰고 뒤돌아보니 웃음과 눈물이 얽혀 있었다”며 “지금은 진창에서 뒹굴고 있지만,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웃기고 슬픈 일로 해석될 거야 같은 예감, 그 예감으로 용기를 얻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책 내용 전편에 흐르는 가톨릭적인 색채는 집안 곳곳에 배어 있던 신앙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이다.
“가톨릭은 제게 질문이자 힘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질문하는 힘’이었죠. ‘왼쪽 뺨마저 대주는 게 맞나?’, 원수를 사랑하는 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같은 의문이었습니다. ‘죽음’도 적극적으로 다루기에, ‘메멘토 모리’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해 봤어요.”
작가는 또 “신앙은 하나의 텍스트로도 영향을 미쳤다”며 “큰 뜻을 찾는 진지함, 원죄 의식이 담긴 작품을 찾게 했다”고 했다. 이어 “욥이나 모세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웠고,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의 매력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소설을 펴내기 전에 코미디 장르의 유튜브 콘텐츠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서울대도 들어갔는데 클럽은 못 들어갔다는 여자’, ‘자소서 봐 달라는 사람은 많은데 인생 네 컷 찍자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여자’ 등의 영상은 반향을 일으켰고, 일부는 조회 수 600만 회를 돌파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서게 된 계기는 관련 워크숍에 참석하면서였다. 이런 워크숍이 또 열리긴 어렵지 않을까 싶어서 신청했는데,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후 3년여 동안 500회 정도 무대에 올랐다. 얼마 전 단독 공연까지 성황리에 마친 그는 앞으로의 목표를 “‘전미 투어’와 넷플릭스 진출”이라고 했다.
작품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특성이 녹아있다. 성장담 사이사이에 짧은 분량의 ‘오픈 마이크’ 챕터가 배치돼, 읽는 이들은 스탠드업 코미디 대본 같은 장면 속에서 웃음과 눈물, 사랑과 미움이 뒤섞인 ‘꽤 낙천적인 아이’가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는지를 느낄 수 있다.
"글쓰기도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농담처럼, 그러나 진지하게 되뇌곤 하지요. 그 물음을 구체화해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독자들에게 ‘다음이 기대되는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작가는 “신앙인으로서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며, “체념과 냉소에 잠식되지 않고, 소망을 잃지 않으며 나와 타인, 세상을 위한 몇 문장을 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