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 교회 신자들은 서울에서 지역 특성에 맞게 공동체를 구성해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현재 가회동본당 관할 구역인 관훈동은 강완숙의 교회 본부(지도부)가 있었고, 정광수의 벽동 공동체는 교리서 제작을 맡았습니다. 황사영의 아현동 공동체는 성물 공방을 운영했고, 이합규의 서소문 공동체는 교리교육을 담당했죠. 주문모 신부가 온 지 5년 만에 교회가 이토록 짜임새 있게 운영됐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정민(베르나르도,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7일 서울대교구 가회동성당에서 ‘신유박해 시기 북촌 교회와 순교 영성’을 주제로 본당에 얽힌 교회사의 의미를 거듭 전했다.
정 교수의 초청 강연은 가회동본당(주임 황중호 신부)이 이날부터 28일까지 진행하는 전시 ‘빛의 순례’ 개막 행사 일환이었다. 한국 가톨릭교회 첫 미사 2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초대전으로, 가톨릭스테인드글라스회 지도 사제 정순오(서울대교구) 신부와 회원 44명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에 입국한 첫 사제인 주문모 신부는 1795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서울 북촌 심처에 있는 최인길(마티아)의 집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이 땅에서 최초로 거행된 미사였다. 이 심처는 현재 가회동성당 관할 구역에 속한다. 가회동은 을묘·신유박해로 순교한 강완숙(골룸바) 등 북촌 일대 복자들의 신앙을 기리는 서울 순례길 ‘생명의 길’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에 가회동본당은 순교와 박해를 통해 이어진 한국 교회사를 빛의 예술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하고자 전시를 마련했다. 2025년 정기 희년 주제 ‘희망의 순례자’와 연계해 230년 전 한국 교회 첫 미사의 감동을 나누기 위한 기획이다.
빛의길_박정석
전시는 장소에 따라 △신앙의 빛(성전) △생명의 빛(역사전시실과 기도공간) △희망의 빛(한옥 은선재)으로 나뉜다. 신앙의 빛 대표작은 제대 벽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빛의 길’이다. 박정석(미카엘) 가톨릭스테인드글라스회 회장의 작품으로, 푸른빛과 노란빛은 각각 평화·고요와 부활·영광을 상징한다. 빛이 완전히 들어올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빛이 인간의 길을 밝히는 느낌을 주도록 연출했다.
생명의 빛 대표작은 가톨릭스테인드글라스회 회원 44명의 작품을 모아 종 모양으로 만든 ‘신앙의 울림’이다. 순교자들의 희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생명의 빛이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성당 마당에 있는 은선재에 설치된 두 개의 나비 날개를 담은 작품은 순교자들의 희생이 새로운 희망이 됐음을 표현했다.
박은진 가톨릭미술해설사와 함께하는 ‘빛의 순례’는 주일(교중)과 수요일 오전 10시 미사 후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