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성인’이라고 하면, 대개 미국 본토의 신부나 사제를 상상할 수도 있으나 그 주인공은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한 수녀였다. 책은 미국교회의 첫 가톨릭 성인 프란체스카 사베리아 카브리니 성녀의 삶을 복원한 전기다. 원제 ‘The World is Too Small’이 암시하듯, 뉴욕이라는 한 도시를 넘어 세 대륙을 누빈 성녀의 전모를 보여준다.
1850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작은 마을 산탄젤로 로디자노에서 열세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가 어떻게 ‘마더 카브리니’라 불리며 1946년 미국 최초의 성인으로 시성되고, 1950년 이민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식 발표되었는지 그 뒷이야기를 빠짐없이 따라간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카브리니 성녀의 ‘역설적 삶’이다. 그는 몸이 약해 수녀회 입회를 거절당했으나 결국 성심의 선교 수녀회를 직접 설립하고 1500명의 수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됐다.
또 어린 시절 물에 빠진 트라우마로 물을 극도로 두려워했음에도, 대서양을 서른 번이나 건넜다. 남은 생존 기간이 2년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67년을 살며 같은 숫자의 시설을 세웠다. 책은 이런 역설들을 통해 불굴의 의지와 신념이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지 증명한다.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단순히 성인의 생애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카브리니 성녀를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사회 운동가이자 탁월한 운영가, 협상가로 조명한다.
어떻게 냉담한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영향력 있는 자선가들로부터 자금을 확보했으며, 불가능해 보이는 행정적 난관을 극복해 냈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이탈리아인 이민 공동체가 밀집된 전략 지점에 거점을 마련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과정, 단순한 자선이 아닌 교육과 의료를 통한 자립 지원 시스템을 설계한 혜안도 담겨 있다. 종교적 불화로 쫓겨나거나 계획이 불발될 때마다 이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한 회복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성녀의 업적이 영적 헌신뿐 아니라 면밀한 비전과 철저한 계획, 자원 관리 그리고 뛰어난 협상 능력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당대의 그 어떤 공공 또는 민간 지도자도 이루지 못한 수십 개 기관을 설립한 경이로운 성과는 굳건한 믿음과 더불어 탁월한 여성 리더십의 결과물이었다.
개인의 전기를 넘어 이민의 시대였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이민사와 미국교회 역사를 아우르는 것도 책의 장점이다. 낯선 땅에서 차별을 마주하면서도 끝내 길을 열어간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집단적 경험, 그들을 외면한 당시 미국 사회의 민낯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연대와 돌봄의 공동체를 일군 한 여성의 모험담이 한 세기의 사회 운동사로 펼쳐진다.
저자는 카브리니 성녀가 이민자들을 단순한 구호 대상이 아니라 한 사회에 기여하는 구성원으로 보았다는 점을 부각한다. “어떻게 한 사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거창한 물음 앞에서, 성녀는 당장 손 닿는 곳부터 바꿔 나갔고, 그 작은 시작들이 모여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프란체스카 카브리니는 생전에도 당대의 모든 교황에게 성인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레오 13세 교황은 실제로 그녀를 성인이라 불렀고, 비오 10세 교황은 그녀를 복음의 진정한 사도라고 불렀다.”(3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