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어둠이 깔린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을 고요히 채우는 음악을 담은 앨범이 발매됐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채워진 손일훈(마르첼리노) 작곡가의 신반 ‘당신의 새벽에(At Your Dawn)’다. 이호찬(요한 사도) 첼리스트와 함께 작업한 ‘이른 봄에(In Early Spring)’에 이은 두 번째 앨범이자 첫 솔로 앨범이다.
“많은 CD와 LP를 듣고 수집하며 10대를 보냈어요. 새벽 무렵 혼자서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속에서 자유를 느꼈고, 언젠가는 나만의 앨범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죠. 지금이 바로 그 시기예요. 그간 음악을 가까이하며 쌓은 추억과 취향을 기록해 남기는 거죠.”
17번까지 이어지는 트랙에는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작곡가 브람스와 라벨, 드뷔시 그리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스카를라티, 메시앙, 프리믈, 막스 레거 등의 작품이 수록됐다. 피아노 소나타와 프렐류드, 가곡까지 다양하다. 특히 첫 번째 트랙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K.208>은 그의 삶과 신앙에 연결된 곡이다.
“유럽의 한 고음악 공연에서 처음 듣고 매료됐어요. 이후 2년간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며 자주 연주했죠. 미사 중 성체를 모시고 주어지는 짧은 묵상 시간을 채우고 싶었어요. 더 깊은 묵상에 편히 잠길 수 있도록요. 음악하는 신앙인으로서 가장 값진 일이었죠.”
스카를라티 소나타와 인간의 격정과 영적 침묵을 대비시킨 메시앙의 <조용한 탄식>(8번 트랙), 성탄의 한 장면을 담은 막스 레거의 가곡 <마리아의 자장가>(15번 트랙) 등 그의 연주는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집이나 차 안, 여행 등 모든 일상에서 편안히 들을 수 있게 구성했어요. 음악은 연주회장에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흐르는 것이니까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만약 누군가 이번 앨범을 듣다 잠에 든다면 대성공인 셈이죠.”
그가 추구하는 편안하고 소박한 음악의 바탕에는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그의 음악은 ‘묵상’의 과정과 닮았다.
“제게 묵상은 생각이 많아지는 것과 반대의 개념이에요.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고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든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것이죠. 음악 작업도 비슷해요.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막히면 방향을 살짝 틀어 보기도 해요. 크게 동요하기보다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저 사람의 음악에는 어떤 근원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면 좋겠어요. 저는 ‘신앙’이라고 답하고 싶어요.”
그의 일상에 녹아 있는 신앙과 성찰은 그를 또 다른 길로 이끌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폐막미사의 미사곡 작곡을 맡게 된 것.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에게 미사곡은 어려서부터 꿈꿔 온 작업이다. 기대와 기쁨이 크지만 그만큼 어깨도 무겁다.
“최근 ‘하이든과 바흐, 모차르트 등 수많은 교회음악을 만든 작곡가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앙을 소리로 표현했을까?’ 같은 생각을 자주 했어요. 결국 모든 건 자신의 만족과 기준이 아닌, 주님을 위한 일이었을 거예요. 가우디의 성당이 지금까지 건축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이고요. 하느님을 향한 일에 어떻게 끝이 있을까요? 앞으로 제가 만들 음악도 저의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로 인해 하느님께 올려지는 음악이 되었으면 해요.”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