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교황 즉위 이후 첫 해외 사목 방문으로 27일 튀르키예를 방문했다. 올해 니케아(현 튀르키예 이즈니크) 공의회 1700주년을 맞아 교회 일치 및 종교 간 대화를 위해 본격적인 사목 일정에 나선 곳은 수도 앙카라가 아니라 이스탄불이다.
지금의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30년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옮겨온 곳이다. 5세기 중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중세 그리스도교와 동방 교회의 중심이었고, 건축과 성화로 대표되는 비잔틴 예술의 보고였다. 지난호에 살펴본 성 소피아 성당이 비잔틴 건축의 걸작이라면 후기 비잔틴 미술의 정수는 코라 구세주 성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사진1)돔 중앙에 성모자상이 자리하고, 그 주변을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다.
3. (사진1) 돔 아래로 최후의 심판을 표현한 그림에 이어 지옥의 문을 부수고 중앙에 선 그리스도의 모습이 펼쳐진다. 아담과 하와를 무덤에서 끌어내고 있고, 그들 뒤로 요한 세례자, 다윗 왕 등 구약의 의인들이 서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성경 속 180여 장면
관광 명소가 몰려 있는 술탄 아흐메트 지역에서 다소 떨어진 코라(Chora)구세주 성당은 현지에서는 카리예 자미(Kariye Camii)로 불린다. 수도원의 부속 성당으로 4세기에 지어졌고,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성곽 밖에 위치해 ‘시골의 성스러운 구세주 교회’라 칭했다. ‘코라’는 ‘도시 밖’ ‘지방’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11세기에 재건된 성당은 13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파괴된 이후 14세기 초반 지금의 돔 형태로 증·개축됐다. 규모면에서는 성 소피아 성당은 물론이고 여느 비잔틴 성당에 비해 상당히 소박한 편이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 마지막 시기에 제작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다. 이들 성화는 안드로니코스 2세 황제의 명에 따라 테오도로스 메토키테스에 의해 장식됐다. 메토키테스는 정치가이자 성미술 후원가로, 말년을 이곳 수도원에서 보내기도 했다. 성당 벽면에서 그가 예수님께 성당을 봉헌하는 모습을 담은 모자이크를 확인할 수 있다. 코라 구세주 성당에는 전체적으로 주님의 탄생과 공생활, 부활과 승천, 최후의 심판, 성모 마리아의 모습 등 성경 속 180여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돔 중앙에 판토크라토르
초기 교회에서는 성당 안에 어떤 성화나 성상도 두지 않았지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후 전례나 교리 전달을 목적으로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성화상 논쟁으로 대다수가 파괴됐다. 8세기부터 한 세기에 걸친 성상 논쟁이 종식되자 교회 내 이에 대한 방침이 강화됐다. 우선 돔의 중앙에 ‘전능하신 그리스도’라는 뜻의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예수의 상반신을 그린 성화를 두게 했다.
6세기부터 제작된 판토크라토르는 주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배치했다. 대다수 동방 교회의 돔이나 앱스(반원형 공간) 뒷면에서 판토크라토르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림 속 예수님은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대체로 왼손에는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을 전한다.(사진4 참조)
십자가 모양의 후광이 감싸고 있는 예수님 모습은 신성과 인성과 삼위일체 하느님을 강조하며,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전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한다. 세속적 권력을 가진 황제들은 국가와 교회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성당의 돔에 판토크라토르를 배치하게 했다.
돔 바로 아래 벽에는 보통 성모 마리아, 열두 사도와 성인의 모습을 그렸는데, 코라 구세주 성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성당의 내부에는 두 개의 큰 돔이 있는데, 그 돔의 중앙에는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과 그리스도가 만물의 통치자임을 표현한 그림이 각각 자리한다.(사진25 참조)
그 아래로 천사들의 모습, 최후의 심판과 부활, 예수님이 행한 기적의 순간들이 펼쳐진다. 다른 한편에는 성모님의 생애도 전개된다.
비잔티움 제국 시절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당 건축 곳곳에 이렇듯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광범위하게 사용됐지만,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수차례 이어진 전쟁과 십자군의 약탈 등으로 대부분 없어지거나 훼손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 소피아 성당과 코라 구세주 성당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코라 구세주 성당.
4.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은 전형적인 판토크라토르. 그 위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왼쪽)과 오병이어의 기적(오른쪽)을 표현한 모자이크가 펼쳐진다.
메토키테스가 코라 성당을 예수님께 봉헌하는 모습.
5. 또 다른 돔의 중앙에는 판토크라토르, 전능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그 아래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왼쪽)과 하혈하는 여인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오른쪽)이 그려져 있고, 성모님과 예수님의 모습이 그 아래 벽면을 채운다.
코라 구세주 성당, 모스크로 사용
코라 구세주 성당의 성화들 역시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며 회칠로 덮이고 성당은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됐으나, 1945년 박물관으로 전환되며 복원작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됐다. 성당은 2020년 다시 모스크로 바뀌었고 유료 입장을 통해 성화를 공개하고 있다.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를 바라볼 때처럼 고개를 한껏 꺾어 올려다 봐야 하지만, 신비롭고 성스러운 모습에 넋을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또 별다른 해설 없이도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성경 내용을 그림에서 바로 유추할 수 있어 결국은 ‘하나인 그리스도교’를 생각하게 한다.
2025년 현재 성 소피아 성당과 코라 구세주 성당은 모스크로 이용돼 이슬람 교리에 따라 남녀 모두 어깨나 다리가 드러나는 옷은 입장이 제한되고, 특히 여성은 스카프 등으로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 신발도 벗어야 하지만, 두 성당의 경우 무슬림이 기도하는 곳이 아니면 신발을 벗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하루 몇 차례 정해진 무슬림 기도 시간에는 들어갈 수 없는데, 대부분 1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방문 전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