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시기를 맞으며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12월 초중반에는 성모님을 기리는 축일이 많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12월 12일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과 관련 있는 음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은 1531년 멕시코 원주민 성 요한 디다코(후안 디에고) 쿠아우틀라토아친(축일 12월 9일)에게 발현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과달루페 성모님은 루르드나 파티마의 성모님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복음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고 지금도 라틴 아메리카 신자들의 큰 공경을 받습니다.
과달루페 성모 성지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자가 찾고 있으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과달루페 성모님을 멕시코와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발현 이후 수많은 예술가가 과달루페 성모님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고, 음악 분야에서도 르네상스 시대부터 우리 시대 작곡가인 오스발도 골리호브에 이르는 많은 음악가가 작품을 남겼습니다.
특히 바로크와 고전파 시대 멕시코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아주 풍성한데, 그중 대표작인 이냐시오 데 예루살렘(Ignacio de Jer?salem, 1707~1769)의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한 아침기도(Matines para Nuestra Se?ora de Guadalupe)>를 소개합니다.
예루살렘은 본래 남부 이탈리아 레체(Lecce)의 음악가 집안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20대 중반에 스페인으로 이주해서 카디스에서 활동하다 1742년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곧 도시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떠올랐고, 1750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교좌 대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일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대성당의 오케스트라를 두 배로 확장했고, 이탈리아풍의 새로운 갈랑트 음악 양식을 구사한 작품을 발표해서 멕시코는 물론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한 아침기도>는 그가 1764년에 쓴 작품입니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사람들이 좋아한 음악 장르는 아침기도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전통적으로 아침기도에서 노래하는 시편과 응송, 교송에 곡을 붙였는데, 단성가에서 당대 오페라 양식을 아우르고 독창, 합창을 포함하는 다채로운 음악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끝부분에 응송 대신 부르는 <테 데움(Te Deum)>은 18세기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걸작으로 꼽히며,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수십 년 동안 계속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을 사랑하고 또 오페라를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18세기 멕시코 사람들이 과달루페 성모 축일을 맞아 짙은 어둠을 헤치고 대성당에 가서, 화려한 음악으로 꾸며진 아침기도에 참석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