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성탄이 다가옵니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에 아기 예수님이 많은 이들에게 빛을 던져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마니피캇>(E♭장조, BWV 243a)을 소개할까 합니다.
‘마니피캇’, 즉 ‘성모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는 특정 시기를 위한 텍스트는 아니지만 구세주 탄생을 준비하고 경축하는 시기에 잘 어울립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의 찬가이면서, 또 개인적인 감사를 역사적이고 집단적인 차원으로 확대하는 기쁨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바흐가 활동할 당시 라이프치히에서도 보통 때는 독일어로 간소하게 ‘마니피캇’을 노래했지만, 성탄과 부활 등 중요한 축일에는 기악 파트가 붙은 화려한 라틴어 ‘마니피캇’을 연주했습니다.
바흐는 1723년 5월에 라이프치히의 교회음악을 책임지는 칸토르(음악감독)로 부임했습니다. 취임 직후부터 교회력에 맞춰 교회음악에 몰두했는데, 놀랍게도 첫 3년 동안 거의 매주 칸타타를 작곡하고 연주했습니다. 아마 그의 삶에서 가장 왕성하고 집중적으로 일한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 해에 바흐는 급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중요한 축일을 준비했는데,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맞이한 큰 축일이 바로 주님 성탄 대축일이었습니다. 당시 대림 시기에는 칸타타를 연주하지 않았기에 그가 첫 성탄 대축일을 위해 만든 의욕적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마니피캇>입니다. 바흐가 라틴어 가사에 붙인 최초의 대작이지요.
<마니피캇>은 바흐의 의욕과 열의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전곡을 다채로우면서도 간결한 열두 개의 악장으로 나눴고, 성악가와 기악 연주자들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배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라틴어 본문 사이사이에 네 곡의 성탄 찬가를 삽입했는데, 이는 라이프치히 전통이기도 했습니다. 음악 형식과 편성이 저마다 다른 네 곡의 찬가는 복음서에 묘사된 천사와 목동, 마리아와 요셉의 기쁨을 노래하지요.
아마 1723년 성탄 대축일에 <마니피캇>을 들은 라이프치히 사람들은 그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대담하고 풍성한 음악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흔히 듣는 익숙한 찬가가 중간에 나올 때마다 포근한 기분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바흐는 <마니피캇>에서 다양한 가사를 음악으로 그려 냈는데,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에서 세 대의 트럼펫이 표출하는 기쁨, ‘그분의 자비는’에서 담긴 목가적인 평온함,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에서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을 표현한 엄격한 푸가가 좋은 예입니다.
바흐는 10여 년 후에 <마니피캇>을 다시 연주하면서 조성도 바꾸고 성탄 찬가도 삭제하면서 작품을 좀 더 ‘단정하게’ 형태로 다듬었습니다만, 역시 1723년 초판이야말로 성탄의 기쁨을 표현하기에 더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 그동안 ‘이준형의 클래식 순례’를 집필해 주신 이준형 평론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