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자(레지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의 50년 작품 세계가 한자리에 펼쳐졌다.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흰물결갤러리에서 개막한 ‘하늘 향한 그리움’ 전. 성상과 성경 말씀을 묵상한 그림, 드로잉과 인터뷰 영상 등이 다채로운 형태와 빛깔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1942년생, 1960년대에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로마 국립미술대학에서 유학한 최 수녀는 1973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 입회했다. 로마에서 공부할 때에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마음을 열어둔 채 4년여간 여러 수도원을 방문했으나 별다른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졸업하기 직전 독일에 있는 지금의 수도회에서 드디어 확고한 성소를 느꼈다.
“한 수녀님이 재봉틀로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도생활은 이렇게 사는 거다, 특별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졸업하고 귀국할 때는 입회를 결정하고 들어왔죠.”
전시 개막식에서 만난 최 수녀는 작은 체구에 미소 짓는 모습이 꾸준히 작업해 온 성상의 이미지들과 닮아있었다. 제1회 가톨릭 미술상을 수상하고, 서울대교구청 성가정상, 가톨릭 의대 성모상 등 국내외 성당의 성상과 십자가, 십자가의 길 14처 등을 작업해 왔지만, 개인적인 작품 활동은 하지 않았고 개인전도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전’이라는 말에 최 수녀는 바로 난색을 표했다.
“윤학(미카엘, 흰물결아트센터 대표) 변호사님이 예수님 그림 한 점을 보시고 전시회를 하자는 거예요. 계속 못 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연말에 바자회 하면서 조그맣게 공간을 마련하자고, 준비하다 보니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웃음)
예수님, 2008(왼쪽에서 첫번째). 예수님, 2025.
50년 전 입국할 때에도 작품 활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서원하면서 주문이 자꾸 들어왔고, 작가가 아니라 수도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성경에 다윗왕이 백성이 몇 명인지 조사하라고 명했는데, 하느님이 크게 벌을 내리셨거든요. 사흘 동안 흑사병이 돌게 했는데, 그때는 그저 인구를 헤아리는 게 왜 안 될까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인구가 많으면 그만큼 임금의 힘이 세지잖아요. 저도 작품 수를 헤아리고 돈이 들어오는 걸 보게 되면 교만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느님께 작품하는 건 모두 바친다는 생각만 했어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고 함께하신다는 마음으로, 모두 주님의 은총이라는 마음으로 늘 감사드려요.”
최봉자 수녀 개인전 전경.
잃어버린 양을 찾아, 2025.
십자고상, 2014.
성모상, 2015.
갤러리 3개 층의 전시 공간에는 최 수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26점의 성상과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함축적으로 담아낸 ‘뜻 그림’ 700점 가운데 20여 점, 드로잉 등이 펼쳐진다. 50년 작품 세계를 총망라했지만, 대규모 돌조각은 대부분 성당이나 학교, 병원 등에 가야만 감상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소품들로 구성된 셈이다. 그러나 성스러우면서 친숙하고, 거룩하면서도 한국적인 작품들에는 특유의 작가 정신이 배어 있다.
“모두 성상이니까 기도의 매개체잖아요. 내 작품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데, 신앙생활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특히 성모님이나 성모자상을 많이 작업했는데, 그냥 아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팔을 연결하면 십자가가 돼요. 또 그냥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인데, 성모님이라고 하면 하늘에 계신, 나와는 먼 분처럼 느껴지니까 내 안의 어머니로 느낄 수 있도록 한국적인 이미지로 표현했죠. 기도의 매개체가 되도록, 도움이 되려고 작업했던 작품들을 내보이는 거니까 관람객들이 보시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기도할 수 있는 성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최 수녀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작품보다 아름답다. 그 다감한 표정들,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닮은 미소를 짓게 된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주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토요일은 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2-536-8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