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일 오후 1시 30분쯤 미리내성요셉애덕수녀회 노곡수련소가 불에 탔다. 미리내성요셉애덕수녀회 제공
성소(聖召),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해 모인 수도자들이 갈 곳을 잃었다. 11월 2일 오후 1시 30분쯤 동네 주민의 다급한 부름에 미리내성요셉애덕수녀회의 수녀들이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수녀회 노곡수련소 뒤편 농기구 창고에서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고 있던 것이다.
소방차 13대가 출동해 화재 진압을 시도했지만,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이날 유난히 세게 불었던 바람 탓이었다. 소방 감식 결과, 화재 원인은 전기합선이나 농약 살포기의 배터리 발화로 추정됐다. 여기서 나온 작은 불씨가 바람을 타고 벽에 붙어 수련소 천장으로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불이 타올랐다. 2층짜리 수련소 건물은 100평 남짓한 공간에 수녀들이 지내는 14개의 방이 자리한 곳이다. 당시 화재를 진압했던 소방관은 “옥상의 모든 물건까지 다 타고나서야 불길이 잦아들었다”고 했다.
수녀들은 일찍이 화재 소식을 알려온 주민 덕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대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련소는 화염으로 창문이 모두 깨지고, 온 벽면이 새까맣게 그을리는 등 이전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뼈대만 남았다. 이곳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수련수녀 12명과 이들을 양성하는 수녀들이 지내고 있었다. 지난해 4월 낙후된 본원을 재건축하면서 수녀 10명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총 31명이 동고동락했다.
미리내성요셉애덕수녀회 수녀들이 불에 탄 노곡수련소에서 복구 작업을 펼치고 있다. 수녀회 노곡수련소 제공
엄동설한 속 화마에 보금자리를 빼앗긴 수녀들은 마을 이장과 주민들 배려로 경로당과 마을회관에서 숙식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성소자들이 온전히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한 상황이다.
불이 꺼진 뒤 한동안은 숨 돌릴 틈도 없었다. 공동기도와 식사시간만 빼면 구성원 모두가 적십자 구호물품 상자에서 얻은 운동복을 입고 세간을 날랐다. 혹시라도 돌아갈 수 있을까, 수련소를 수없이 드나들며 자체적으로 복구 작업을 펼쳤지만, 건물 내부는 마스크 없이는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천장 전기와 수도, 바닥 보일러까지 모두 망가졌다.
불이 난 뒤 3주가 지나 철거작업이 이어졌다.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복구비용은 오롯이 수녀회의 몫이다. 가난과 겸손은 함께 가는 것이라 믿고, 초창기 수녀들부터 전통 장류 등을 만들어 팔아 자급자족해온 이들에게 천문학적인 화재 복구비용은 너무 크다. 본원 재건축에 수련소 화재 복구 작업을 책임져야 하는 수녀회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 어렵다.
수녀회 노곡수련소장 장진애 수녀는 “무엇보다 양성 과정에 있는 수련수녀들이 하루빨리 안정된 환경에서 교육받고, 본국으로 돌아가 선교와 애덕·교육사업에 헌신하게 되면 좋겠다”며 “빨리 수련소를 복구해 하느님께서 중심인 삶을 더욱 다지고 교회에 봉사하고 싶다”고 전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후견인 : 미리내성요셉애덕수녀회 노곡수련소장 장진애 수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음을 우리 믿는 이들은 신앙의 눈으로 보고 깨닫습니다. 수련소 화재가 본회 수도자들에게는 버림과 비움·겸손으로 가는 쇄신의 기회가 되고, 이웃에게는 기도와 희사로 연대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선한 이웃에게 하느님께서 풍성히 갚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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