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가 다가오면 많은 신자가 사순과 부활 시기를 성찰하는 묵상집을 찾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은 하루 묵상에 초점을 두어, 재의 수요일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교회가 가장 강렬한 신앙의 시간을 걸어가는 90일의 여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은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주간,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 부활 팔일 축제와 부활 시기, 그리고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이어지는 전례의 흐름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영적 여정’으로 제시한다.
각 장은 소주제로 세분되어 전례 안에 담긴 신학과 영성을 자세히 설명한다. 성유 축성 미사, 파스카 성삼일, 부활 팔일 축제 등 주요 전례의 의미를 해설하면서, 신자들이 ‘하루의 묵상’이 아니라 ‘사순과 부활 시기 전체의 묵상’을 살도록 돕는다.
특히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 전례의 메시지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은 유혹과 예수님의 광야 유혹, 바벨탑 사건과 성령 강림 사건을 대비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신구약 성경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책은 또한 각 글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게 묘사해, 독자가 그 장면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저자 쿠르트 코흐 추기경은 사순 시기를 ‘십자가를 통하여 빛에 이르는 길(per crucem ad lucem)’로 규정한다.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하나의 길이며, 초대 교회 신자들이 ‘새 길을 따르는 이들’로 불렸듯 오늘의 신자도 이 길 위를 걷는 존재라는 것이다.
재의 수요일 전례에서 사용하는 재의 의미도 새롭게 풀어낸다. 재는 단순히 인간의 덧없음만을 말하는 표지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표지이며,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사랑의 행위로 변화시켜 부활의 길을 여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성주간에 관해서는 “신자들이 예수님의 길을 전례 안에서 실제로 따라 걸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에 동행하신다는 믿음을 굳건히 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은 전례를 일상의 영성으로 확장하는 시선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찬례를 거행하셨듯, 우리의 삶 또한 매 순간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108쪽)고 제시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장 낮추시고 바닥까지 내려간 그곳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자신을 낮출 수 있고 또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한 이에게만 위로 올라가는 가벼움이 선사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위로가 된다.”(2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