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해마다 불교의 큰 경축일에 맞춰 불자들에게 인사를 보낸다. 교회가 이웃 종교의 기념일을 기억하고 축하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만남과 교류가 결코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일깨운다.
나아가 역사는 때론 낯설고 대담한 방식으로 두 종교를 연결한다. 불교의 석가모니 부처가 그리스도교 성인이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 서사는 동서양을 횡단해 ‘성 요사팟(Josaphat)’이라는 이름으로 변모했고, 여러 언어의 기록과 노래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렀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왕자 요사팟은 궁정에서 질병과 죽음과 가난을 보지 못한 채 쾌락과 아름다움만 접하며 자란다. 그러던 중 외부 세계의 고통과 죽음을 직시하고, 수도승 바를라암(Barlaam)을 만난다. 부친 아벤니르 왕의 반대가 잇따르지만, 요사팟은 끝내 왕위를 버리고 은수자로 살아간다. 이야기는 불교권 독자에게 익숙한 싯다르타의 출가 드라마를 연상시키며, 결말은 그리스도교적 회심과 성덕으로 재배치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요사팟 명칭의 이동 경로다. 보살(Bodhisattva)이 중동을 거치며 부다사프(Budasaf)에서 유다사프(Yudasaf)가 된다. B가 Y로 잘못 읽힌 필사·독해 오류가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이는 요다사프(Iodasaph)와 그리스어 요아사프(Ioasaph)로 변형되며 서방에서 요사팟으로 정착한다. 이름의 여정은 설화가 일종의 ‘번역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음을 유추하게 한다.
요사팟 이야기는 여러 지역에서 운문과 노래와 암송에 최적화되어 지속적으로 변주되었다. 문자 문화보다 구술 문화에 친숙했던 중세에서 노래로 불린다는 것은, 곧 살아남는다는 뜻이었다. 이야기는 가락으로 불릴 수 있는 형태로, 공동체의 기억으로 쉬이 들어갈 수 있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소리와 운율은 전승의 길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여러 언어로 전해지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요사팟 전승은 아랍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에티오피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오크어(남프랑스), 카탈루냐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고(古) 노르드어 등으로 번안되어, 각 지역의 시와 서사 전통 속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요사팟이 동서 교류사에서 지닌 의미는 호기심 거리를 넘어선다. 이는 종교와 문화의 교류가 매우 역동적이고 상호교차적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번역과 각색, 필사와 낭독, 구전(口傳)이 모든 과정에서 함께 있었다. 요사팟은 붓다가 곧장 그리스도교 성인이 되었다는 단순한 등식이 아니다. 그는 이야기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선율로 불리고 기록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재탄생된 인물이다. 중세 후기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의 성인들에 대한 방대한 저서 「황금전설」에 바를라암과 요사팟 항목이 수록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Nostra Aetate)」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교는 신심과 확신으로 완전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거나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가르친다.”
「우리 시대」의 메시지는 바를라암과 요사팟 서사를 요약하며 의미를 새롭게 비춘다. 석가모니 부처와 성 요사팟이 서로 공명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불교라는 이웃종교를 이해할 수 있는 선명한 통로가 된다. 환락과 영화를 내려놓고, 자신을 끊임없이 비우는 길. 요사팟의 여정이 세계 지도에 그린 역동적인 궤적은, 두 종교에 새삼 다른 빛을 드리운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