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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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조스캥 데프레의 〈미제레레〉와 사보나롤라의 「비참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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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이 되면 우리는 참회의 상징인 재를 이마에 얹는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참조) 이는 말보다 먼저 촉감으로 인식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거룩한 공의회」는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 표징들(signa sensibilia)’을 통해 전례 안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피부로 느끼는 거친 잿빛 먼지. 감각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필멸할 자이며 유한한 자임을 절감한다.


이를 새기며 재의 수요일 미사 화답송인 시편 51편, 일명 〈미제레레〉를 듣는다.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mei, Deus).” 자신의 나약함과 미소함을 깨달은 인간이 올리는, 간명하고도 진실한 간구이자 기도다.


그중 플랑드르의 거장 조스캥 데프레(Josquin des Prez, 1450~1521)의 〈미제레레〉는 특이하다. 다른 성부들이 시편 나머지 가사를 이어 가는 동안, 테노르(Tenor) 첫 성부가 오직 한 문장만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서 반복은 수사적 장치를 넘어, 지속되는 간청과 청원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독특한 형식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가 있다. 참회 시편을 가장 처절하게 붙들었던 인물, 이탈리아 교회 개혁자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다.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자이자 설교가였던 그는 이단 및 선동 혐의로 파문되어 투옥되었고, 죽음 앞에서 시편 51편을 묵상하며 「비참한 나(Infelix ego)」를 쓴다. 추종자들은 이를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에 비견되는 옥중 유고로 보았다. 두드러지는 부분은 글 전반을 통틀어 거듭되는 미제레레인데,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비참한 나, 모든 도움에서 버림받은 자. 하늘과 땅을 거슬러 죄를 지은 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중략)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mei, Deus, secundum magnam misericordiam tuam).”


당시 조스캥은 사보나롤라의 고향이자 그를 지지했던 에르콜레 1세 공작이 다스리던 페라라에서 활동했다. 1498년 사보나롤라 처형 직후 페라라에서 「Infelix ego」가 출판되었으며, 도시는 그의 사상적 거점으로 남았다. 공작은 조스캥에게 〈미제레레〉를 위촉했고, 작품은 사보나롤라의 강력한 자장 아래에서 탄생했다. 


음악학자 패트릭 메이시는 동일한 참회로 회귀하는 텍스트 구조가, 조스캥의 순환 구조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 곡은 호화로운 다성음악을 지양했던 그의 취향을 반영하듯, 간소한 작법으로 작곡되었다. ‘허영의 불꽃’이라는 참회 운동을 통해 예술품과 사치품을 소각했던 사보나롤라를 의식했던 것일까.


사보나롤라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존재다. 그렇지만 많은 이가 그의 텍스트에서 각자 의미를 찾았다. 조스캥을 비롯한 여러 음악가가 사보나롤라의 「Infelix ego」에 영향을 받았고, 선율을 붙였다. 16세기 박해받던 영국 가톨릭 신자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 역시 사보나롤라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우리는 사보나롤라가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안다. 그는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고, 말 그대로 ‘재’가 되어 흩어졌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성경 말씀은, 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문구가 되었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가 모두 마주할 보편적 운명이기도 하다.


재의 수요일에 얹히는 재, 전례 중 불리는 미제레레. 몸에 닿는 통회와 귀에 맴도는 후렴이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는 사순의 초입에 선다.


“Miserere mei, Deus(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결국 재로 돌아갈 존재가, 주님께 자비를 탄원하는 날이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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