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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SBNR의 시대, 영성에 대한 갈망이 향하는 곳 아르보 패르트 〈요한 수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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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출신 아르보 패르트(Arvo P?rt, 1935~)는 흔히 ‘영성의 음악가’로 통한다. 그는 동시대 작곡가 중에서도 유례없이 자주 연주되며, 현대음악이라는 변방을 넘어 상설 레퍼토리 중심에 자리한다. 2026년 1월 발표된 클래식 데이터베이스 ‘바흐트랙(Bachtrack)’ 집계에 따르면, 그는 2025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른 현존 작곡가다. 그의 아들 마이클 패르트는 이 현상이 ‘내면의 영적 깊이’를 지닌 음악에 대한 수요를 시사한다고 말한다.


이는 일종의 징후로 보인다. 확신을 더한 것은 존스 홉킨스 대학 출판부가 발행하는 그리스도교 영성 학술지 「스피리투스(Spiritus: A Journal of Christian Spirituality)」에서 패르트 음악을 다룬 논문을 접했을 때다. 「스피리투스」는 영성을 문학·음악·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학제적으로 조망해 왔는데, 해당 연구는 패르트 작품을 중세부터 내려온 임종을 준비하는 방법, 일명 ‘죽음의 기술(Ars Moriendi)’과 병치해 해석했다.



요지는 분명하다. 그의 음악이 병자나 호스피스 환자를 넘어, 우리가 죽음이라는 상황에서조차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영적 매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져보자. 왜 오늘날 청중은 패르트를 통해 영성을 찾는가.


이는 종교에 소속되지 않으면서도 영적 삶을 추구하는 현대의 ‘영성-종교 분리’ 양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영적이되 종교적이지 않은(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태도는 제도 종교와 거리를 두면서도 초월과 신성함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는다. 


2023년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자신이 ‘SBNR’이라고 응답한 이는 1만 1천 명 중 22로 보고됐다. 대략 5명 중 1명꼴이다. 이미 20세기 말부터 신학자 산드라 슈나이더스(Sandra M. Schneiders)나 로널드 롤하이저(Ronald Rolheiser)가 ‘영성과 종교의 분화’ 경향을 예리하게 포착해 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는 패르트가 영성의 대명사로 주목받는 추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사순시기 패르트의 〈요한 수난곡〉을 듣는 일은 특별하다. 그가 들려주는 수난이 여타 수난곡처럼 극적 대조와 감정의 파고로 몰아붙이는 드라마보다는, 지속적 관상이자 영적 체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여기서 패르트는 자신의 틴티나불리(tintinnabuli) 작법을 전면에 내세운다. 한 성부는 성경 텍스트를 낭송하듯 진행하고, 다른 성부는 종소리처럼 삼화음을 이루며 문장 윤곽을 신비롭게 감싼다. 합창은 군중(투르바, turba)의 목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구절을 내뱉지만, 함성조차 과잉으로 치닫지 않는다. 오히려 차갑게 절제된 외침이야말로, 악의 평범성과 폭력의 일상성을 선연히 드러낸다.



패르트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최소한의 음으로 제시하며, 죽음과 침묵 같은 현대인이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외면한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그 지점에서 패르트의 미니멀리즘은 동시대 영성에 대한 목마름과 맞닿는다. 


많은 이가 종교에 더는 의지하지 않고 때론 거리감까지 보이지만, 고통·죄책·상실·무력감 앞에서 자신을 지탱해 줄 언어를 찾는다. 그래서 2011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정교회 신자인 패르트를 교황청 문화평의회 위원으로 임명했고, 또 그가 2017년 라칭거 상(Ratzinger Prize) 수상자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상이 본래 신학적 공헌을 기려 왔지만, 예술 분야까지 지평을 확장해 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다시 질문을 던진다. 종교에서 멀어지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패르트의 음악을 통해 영성을 구하는가. 그 끝없는 갈망은 그리스도교에 무엇을 요청하는가. 교회는 이 열망을 어떻게 식별하고 응답할 수 있을까. 그의 〈요한 수난곡〉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속 그리스도의 수난을 여백에 가까운 음으로 투명하게 노래할 뿐이다. 오늘날 패르트 열풍은 영성을 갈구하되 종교에는 회의적인, 우리 시대의 징표에 가깝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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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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