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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대화」…“놓아 버렸을 때, 비로소 들려오는 하느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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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시작된 후 16세기까지는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관상 기도를 그리스도교 영성의 목표로 여겼다. 이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 침묵으로 머무는 기도 방식이다.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거나 묵상하는 단계를 넘어,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계심을 믿고 그 현존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이런 하느님 앞에 조용히 머무는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이어가는 전통적인 방법의 하나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이 유산은 살아 있는 전통으로서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이후가 돼서야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1975년 ‘향심 기도’ 운동을 시작한 그리스도교 관상 기도의 대가, 토마스 키팅 신부는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재조명하고, 관상기도를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한다.


‘그리스도교 관상의 길’이라는 부제처럼, 관상 기도의 전통을 현대적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깊이 성찰하면서, 신비 체험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인간의 심리와 의식 구조를 통과하는 여정으로 설명한다.


그가 정의하는 관상 기도는 우리 삶을 지탱해 온 오랜 욕구와 통제 구조를 하느님 앞에서 서서히 내려놓는 과정이다. 무언가를 이루거나 하느님 앞에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물며 자유와 진리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배워가는 도정이다.


어린 시절 형성된 결핍과 두려움, 타인과 세상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신앙과 기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며, 관상 기도가 이 구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서서히 비워 가는 과정임을 밝힌다.


무엇보다 키팅 신부는 관상 기도의 전통을 현대의 심리학적 통찰로 조명한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관상 여정과 그의 영성 세계를 이해하는 사상적 배경을 함께 다룬다.



관상 기도는 인간 의식에 단계적인 변화를 불러오지만, 변화가 언제나 평온하지만은 않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혼란과 메마름을 경험할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것이 기도를 잘못한 것일까, 오히려 영적 성장이 더 후퇴한 것일까. 키팅 신부는 관상 기도 안에서 경험되는 다양한 어려움을 인간 내면이 정화되는 과정, ‘신적 치료’의 일부이자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여정이라고 설명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 성녀 예수의 데레사, 성 안토니오에 이르기까지 이 길을 먼저 걸었던 이들의 체험을 들려주면서, 관상 기도에서 겪는 어려움이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돼 왔는지 보여준다.


저자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놓아 버림’이다. 이 빈자리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들어선다. 


“기도가 깊어지면서 은총은 우리 정신 깊숙한 곳에 이르러 일생 동안 축적된 정서적 손상과 잔재를 덜어 내게 해 준다. 이성과 의지 행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던 단계에서 직관적 기능을 통해 그분께 직접 다가가는 단계로 옮겨 간다.”(172쪽)


초판 출간 이후 28년 만에 재출간된 책은 새로운 번역으로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내용을 다시 소개한다. 책의 디자인과 구성도 개편해 가독성을 높였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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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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