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병원부터 전국에서 찾아든 인파로 북새통인 종합 병원까지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이 멎는 마지막까지 수시로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병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질병과 고통의 지뢰밭, 생사의 갈림길이 즐비한 병원 곳곳에서 생경한 예술작품들을 만날 때가 있다. 백색의 가운, 서늘한 의료기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이들 작품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고, 때로는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휴식을 선사한다.
그동안 서울성모병원에서 환우와 그 가족에게 희망과 회복의 염원을 전했던 작품들이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세계 병자의 날’인 지난 2월 11일 개막한 ‘위안과 치유의 공명’ 전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병원장 이지열)이 소장품 66점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에 기탁하며 성사됐다. 평소 병마와 싸우는 환우, 그 곁을 지키는 고단한 가족의 사연 많은 심신에 따뜻한 위로와 묵직한 공감을 전하던 작품들이 병원 밖 관람객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이두식 작 ‘잔칫날’ 중 일부.
병원 측에서 구입한 작품외에 기증된 작품도 상당수다. 웬만한 갤러리에서도 기획하기 힘든 국내 관록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병원에 모인 셈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20여 점 역시 쟁쟁하다. ‘성 정하상 바오로’, ‘노주교상’ 등 인물화를 주로 그린 박득순(요셉) 화백의 풍경화부터 강렬한 색채로 생명력과 활기를 드러낸 이두식 화백의 ‘잔칫날’, 켜켜이 쌓은 한지에 희망과 기도의 마음을 담은 김춘옥(로사) 작가의 작품이 신종식(암브로시오)·최영실(크리스티나)·황영애·전경옥·서명덕·서진선 작가의 작품과 한자리에 놓였다. 천기원(안토니오) 작가는 서울성모병원에서 간암 수술을 받은 뒤 ‘봄의 초대’를 제작해 기증했고, 김은옥 작가는 환우들이 회복돼 나들이 가길 희망하며 ‘나들이 길’을 그렸다. 평소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던 색감과 규모의 작품들이다.
김춘옥 작 '생명-희망'.
강정윤(유스티나) 학예실장은 “치유의 염원과 다양한 기억 및 사연을 지닌 서울성모병원의 일부 작품이 박물관으로 옮겨져 더욱 체계적인 연구와 보존 과정을 거쳐 공공의 문화 공간에서 또 다른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고 의의를 밝혔다.
관장 원종현 신부도 “이번 전시는 단순히 병원의 예술작품 공개를 넘어 예술이 일상의 경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왔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박물관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위로와 사유의 시간을 제안한다”고 전했다.
김경옥 작 '천사'.
전시는 28일까지 이어진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