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르타뉴 지방을 사랑한다. 화강암 바닥에 발을 딛으면 내가 회화에서 추구하는 침묵하며 존재하는 강렬한 야생, 원시주의를 발견하게 된다.”(고갱)
<녹색 그리스도>는 고갱이 타히티로 떠나기 전인 1888년에서 1889년경,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Pont-Aven) 체류 당시 그린 것입니다. 특유의 거친 자연과 독특한 문화가 발달한 브르타뉴의 모습에 순수, 야생을 찾는 고갱은 매료될 수밖에 없었지요.
당대 미술계에서 많은 존경을 받았던 고갱, 그가 머물던 시골마을 ‘퐁타방’에 미술인들이 많이 찾아와 일명 ‘퐁타방파’가 만들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자연을 기반으로 한 단순하고 견고한 형태, 환상적이고 밀도감 높은 색채와 강렬한 윤곽선의 표현이 특징인 그의 화풍을 일컬어 ‘종합주의(Synth?tisme)’라 하지요. 1888년 10~12월 빈센트 반고흐의 초대로 프랑스 남부 아를에 두 달간 함께 머문 적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반고흐가 스스로 귀를 자르는 끔찍한 사건으로 이 짧은 동거에 종지부를 찍게 된 일화도 유명합니다.
멀리 짙푸른 빛의 바다가 있고 나지막한 언덕 사이에 난 굽은 길을 따라오면 전경 우측으로 청록색 인물들이 있는데, 매우 경직되어 보이는 것은 바로 조각상이기 때문입니다. 퐁타방에서 2km 거리에 니종(Nizon)이라는 작은 마을의 성당과 성당 묘지에는 약 1550년경 세워진 높이가 무려 7m에 이르는 짙은 화강석 조각, <니종의 십자군상(Calvary of Nizon)>이 있습니다. 이는 흑사병의 죽음으로부터 마을 주민들을 보호해 달라고 빌기 위한 것이었지요.
여기 고갱이 화폭에 담은 것은 십자가의 하단부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 위에 눕히고 고통스러워하는 성모,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마리아 살로메의 모습입니다. 이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사실적이고 섬세한 <피에타(Pieta)>와 대조적인 단순하고 경직된 모습인데, 어쩌면 깊은 절망과 슬픔을 표현하는데 이 같은 거친 단순함이 더 강렬하게 전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는 붉은 두건을 제외하고 어두운 푸른 톤이어서 조각의 일부로 보이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브르타뉴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입니다. 뒤의 조각과 구분이 안 되는 표현은 정신적으로 피에타의 고통과 일치되어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 주는 것으로 그 표현이 절묘합니다.
16세기 흑사병의 죽음의 공포, 19세기 말 어느 브르타뉴 여인의 간절한 기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노래합니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걸어가는 한,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과 마주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