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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루트비히 판 베토벤 〈올리브산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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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오랫동안 ‘종교를 넘어 운명과 싸운 투사’ 혹은 ‘보편 종교의 화신’으로 생각되었다. 제9번 교향곡, 일명 ‘환희의 송가’가 발산하는 거대한 인본주의적 메시지에 가려, 그가 가졌던 그리스도교 신앙은 학계에서조차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연구는 이 오랜 도식을 상당 부분 수정하고 있다. 2016년 니콜라스 총의 논문 「베토벤의 가톨릭성(Beethovens Catholicism)」이나 2024년 출간된 「가톨릭 베토벤(The Catholic Beethoven)」 같은 단행본은 베토벤과 가톨릭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한다.


18세기 말 독일어권에서는 신앙과 이성의 화해, 인간의 내면 및 존엄성, 교육을 강조하는 가톨릭 계몽주의(Catholic Enlightenment)가 전개되었다. 베토벤의 음악적 근간은 이런 독일 가톨릭 계몽주의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베토벤이 레겐스부르크 주교였던 요한 미하엘 자일러(Johann Michael Sailer, 1751~1832)를 존경했고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자일러는 독일 가톨릭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신학자로, 베토벤은 그의 책을 세 권이나 소장했다. 또한 베토벤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 독일어판도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자일러가 번역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일러는 개신교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종교적 관용성을 주장했고,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공격받기도 했다. 그의 초기 에큐메니컬 사상이 베토벤의 초교파적 신념과 유사성을 보이며, 훗날 제2차 바티칸공의회까지 연결된다는 점은 의외의 연결고리가 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8년 자일러를 독일 교회 쇄신의 인물로 언급했고, 베네딕토 16세 교황 역시 2007년 연설에서 그를 인용하기도 했다.


일련의 흐름에서 중요하게 부상하는 작품이 1803년 초연된 오라토리오 〈올리브산의 그리스도〉다. 이는 베토벤 초기작이라는 이유로, 〈장엄 미사〉에 비해 덜 완숙하다는 평가로 인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 곡이 베토벤의 종교성과 실존적 위기를 드러내는 고백이라고 본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십자가 사건보다 겟세마니의 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 갈등과 고뇌에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듯, 베토벤은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서 난청으로 인한 절망을 토로한다. 음악가로서 청력을 잃는다는 공포, 삶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까지 고백한다. 그런 그를 붙잡은 것은 예술이었고, 유서 이후 베토벤은 〈올리브산의 그리스도〉를 작곡한다. 친연성은 강렬하다.


그리스도께서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도 끝내 아버지의 뜻을 수용하는 모습은, 절망 속에서 결국 살기로 결심한 베토벤의 내적 서사와도 유사하다. 그래서 이는 베토벤 자신의 번민을 우회적으로 기록한 음악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밤이 베토벤의 어두운 밤과 겹치는 순간이다.


그리스도를 테너로 설정해 극 중심에 세운 방식은 인상적이다. 그는 멀리서 낭독되는 존재가 아니라,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통해 고통과 순명의 결단을 노래하는 주인공이다. 초연 이후 이 곡이 “지나치게 오페라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성격 덕분에, 그리스도의 인간적 고뇌는 청중에게 훨씬 밀접하게 다가온다.


베토벤은 이런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불안과 흔들림을 담은 대목들에서는 전조와 반음계적 진행이 심리적 동요를 묘사한다. 선율 또한 상행하거나 도약 후 급히 하강하거나 가라앉는 식으로 쓰여 있어, 영혼이 한순간 솟구쳤다가 이내 무너지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리브산의 그리스도〉에는 하느님 앞에서의 순종과 응답, 고통과 결단, 감정과 초월의 긴장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작품을 통해 베토벤은 그리스도교 역사와 당대 종교 문화 맥락을 생생히 조망할 수 있는 좌표가 된다. 최근 ‘가톨릭 베토벤’ 연구들이 이 오라토리오에 주목하는 이유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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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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