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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마태 수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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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서가에 도미니코회 수도자 요하네스 타울러(Johannes Tauler, 1300~1361)의 강론집이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이자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음악감독, 즉 칸토르였던 바흐가 왜 중세 가톨릭 신비주의자의 저서를 소장했을까.


1750년 바흐가 세상을 떠난 뒤 작성된 유품 목록에는 81권의 신학 서적이 기록되어 있다. 바흐는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장서는 당대 신학의 다양한 조류가 반영된 ‘신학자의 서가’에 가깝다.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추구한 신앙 쇄신 운동, 이른바 ‘경건주의(Pietism)’ 관련 저작도 다수 보인다.


경건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아른트, 프랑케, 스페너, 뮐러의 서적이 바흐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추구하며 개인 쇄신 및 종교 체험을 강조했는데, 그 근원은 13~14세기 독일 라인강 유역을 중심으로 피어났던 ‘라인란트 신비주의(Rhenish mysticism)’와 맞닿아 있다. 타울러는 이런 흐름의 핵심 인물이었다.


예일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볼커 레핀(Volker Leppin)은 라인란트 신비주의 계승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그 정점에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가 있었으나, 그의 명제 일부가 요한 22세 교황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며 그의 사상을 수용하는데 제약이 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타울러는 에크하르트 신비주의를 계승하고, 때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자신의 이름으로 대체해 전달하는 매개자가 되었다.


즉 에크하르트라는 이름이 무명이나 타울러의 이름으로 위장되어 필사본 형태로 조심스럽게 전해졌다면, 타울러의 저술은 인쇄물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이를 통해 타울러는 라인란트 신비주의를 대표하는 저자가 되었으며, 루터와 경건주의자들 같은 프로테스탄트 영성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바흐가 책을 소장했던 요한 아른트 역시 당대 타울러의 것으로 여겨졌던 에크하르트 강론의 영향을 받았다. 에크하르트가 강조한 ‘하느님과 인간 영혼의 일치’가 타울러를 거쳐 아른트에게 이식된 것이다. 아른트는 「참된 그리스도교」 3권 제1장에서 이렇게 적는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신자의 마음 안에 거하신다. 중세 신비가 타울러가 특별히 이를 다루었다.”


이후 경건주의는 독일 전역을 휩쓴 영적 부흥 운동으로 확장되었다. 경건주의의 거점 도시 할레와 바흐가 활동했던 라이프치히는 마차로 불과 반나절 거리였고, 바흐는 두 도시 사이의 사상이 교차하는 궤적 한가운데 있었다. 요컨대 에크하르트-타울러-루터-아른트-경건주의-바흐로 이어지는 거대한 계보는 하느님과의 신비적 일치에 대한 갈망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관통된다. 바흐의 서재는 이 조류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모든 흐름은 1727년 라이프치히 성금요일 저녁, 〈마태 수난곡〉 초연에서 하나로 수렴된다. 작품은 복음사가가 노래하는 마태오복음 서사를 따르지만, 음악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영혼의 주관적 체험에 가깝다. 제1합창과 제2합창, 두 오케스트라가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은, 수난 현장을 중계하는 장치를 넘어 긴밀한 대화와 친교를 시각·청각화한다.


첫 합창 “오라, 너희 딸들아, 슬퍼하라”에서 시온의 딸이 신자들과 주고받는 대화는 아가서에서 이미지를 차용했으며, 신랑 그리스도와 신부 교회, 나아가 인간 영혼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며 애곡하는 이들은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희생되시는지 보라”고 외친다.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부인한 뒤 흐느끼는 장면에서 나오는 알토 아리아 “자비를 베푸소서(Erbarme dich)”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사랑하는 이를 배반한 연인이, 자신을 끝까지 사랑했던 눈빛과 응시 앞에서 쏟아내는 처절한 후회요 눈물이다.


결국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인류를 사랑하시어 목숨까지 내어주신 주님의 ‘연가’로 읽어내는 독법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 뿌리는 라이프치히와 할레를 지나 14세기 라인 강변에서 하느님과 영혼의 합일에 대해 말하던 에크하르트, 타울러 같은 도미니코회 수사들과 만난다. 바흐는 이 위대한 음악적 강론 도입부에서 “보라! 누구를? 신랑을!”이라고 외치며, 우리 모두가 신랑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일치에 도달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마태 수난곡〉은 비통한 수난곡이지만, 가장 위대한 사랑의 노래이기도 하다.



글 _ 박찬이 율리안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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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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