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암흑 속 은근한 빛을 발하며 다가오는 회화와의 만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놀라운 마력을 발산하는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은 르네상스를 지나고 풍요의 극치에 이른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거장입니다. 이같이 어두운 배경에 묻힌 인물에 강렬한 빛이 비치며 빛과 암흑의 극적 대비로 감정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일컬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법)’라고 합니다.
네덜란드 섬유업 도시 레이던(Leiden) 태생인 그는 제분업을 하는 부모 슬하에 태어나 비교적 안락한 유년기를 보냈고, 라틴어와 화란어, 고전 언어 그리고 성경을 접하며 탄탄한 인문학, 정신적 기초를 다졌습니다. 24세에는 대도시 암스테르담에 정착해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영원한 뮤즈 사스키아(Saskia)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도 누렸으나,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말년에는 전 재산을 잃고 빈민가에서 홀로 눈을 감아야 한 렘브란트, 그의 삶은 어둠과 빛의 대비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청년기 작인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야>에서는 고뇌하는 예언자의 섬세하고 복잡미묘한 심리묘사가 돋보입니다. 중앙에 백발의 긴 턱수염의 노인은 예언자 예레미야입니다. 두꺼운 성경 위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 팔을 괴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가 고독하게 짊어져야 할 인생의 버거움이 느껴집니다.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한 예레미야는 기원전 58년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파괴될 예루살렘의 운명을 내다보며 비탄하는데, 이 환영은 후경의 아치형 동굴 너머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모습으로 펼쳐집니다. 동방의 짙은 자줏빛 가운 차림의 예언자 주위에는 성경, 금전과 제례 용기들이 가득한 황금 수반, 양탄자 등 화려한 장신구들이 가득합니다. 신성모독, 교만과 방탕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닥칠 비운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예언자의 안타까움….
깨어있는 자의 비탄과 깊은 절망이 은근하면서 극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신비롭게도 마치 노인의 몸에 밝은 등잔불을 품고 있어서 그 불빛이 은근히 외부로 발산하는 듯 느껴집니다.
칠흑과 같은 암흑을 겪은 자만이 그 깊이의 어둠을, 경이롭고 진정한 사랑을 만난 자만이 황홀한 빛을 담을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가 드라마틱한 삶, 극적인 어둠과 빛을 선물 받은 이유입니다. 때로는 암흑으로만 느껴지는 세상, 하지만 내 안에 등불을 품으면 그 빛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