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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윌리엄 버드의 〈나는 부활하였다〉와 헨리 가넷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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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6년 여름, 템스강 북쪽 할리퍼드의 한 저택. 문을 굳게 닫은 채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다. 잉글랜드 선교 책임자였던 예수회원 헨리 가넷(Henry Garnet, 1555~1606)과 음악을 지휘하고 감독한 작곡가 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40~1623)가 있었다. 기록은 잉글랜드 국교회 예배를 거부하고 지하로 밀려난 가톨릭 신앙 공동체, ‘레쿠전트(Recusant)’들의 실제 전례 현장을 증언한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다른 방식으로 교회를 떠받쳤다. 가넷 신부는 1586년 영국 선교를 위해 입국한 뒤, 20여 년간 가톨릭 인사들의 집을 전전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흩어진 신자들을 결집했다. 버드는 엘리자베스 1세의 전속 음악가였지만, 가톨릭 신앙을 지키며 전례와 교회음악 차원에서 공동체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이들은 당대 영국 지하교회의 서로 다른 역할이자 기둥이었다.


1605년과 1607년, 버드는 「그라두알리아(Gradualia)」를 세상에 내놓았다. 전례력에 따른 주요 축일 미사 고유문과 관련 곡들을 수록한 방대한 전례음악 모음집이었다. 문제는 첫 권이 출판된 해가 1605년이라는 점이다. 같은 해 영국 가톨릭 신자들이 주축이 되어 제임스 1세를 폭약으로 암살하려고 했던 ‘화약 음모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후 반가톨릭 정서는 극도로 악화했고, 가톨릭 신앙은 자체로 정치적 불충의 표지로 간주했다. 실제로 한 남자가 「그라두알리아」 제1권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일도 있었다.


화약 음모 사건을 계기로 가넷 신부는 체포되었다. 그는 주동자의 고해성사를 통해 사전에 계획을 알게 되었고, 설득을 통해 폭력을 막으려 했으나 끝내 저지하지 못했다. 그는 국왕 암살 역모의 공모자로 몰렸고, 자신이 마지막까지 고해성사의 비밀을 수호했으며 무력행사에 반대했음을 주장했다. 그는 1606년 처형되었고, 죽음 이후 피가 묻은 짚에서 그의 얼굴 형상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졌다. 일명 ‘가넷의 짚(Garnets Straw)’은 순교자의 상징이 되었다.


버드는 가넷 신부 사후 17년을 더 살았다. 레쿠전트에게 청구되었던 끝없는 벌금 고지서들. 거듭된 억압과 긴장. 그래도 그는 굴하지 않고 작곡하고 출판했다. 그의 후기 음악은 점점 더 압축되고 내밀해진다. 대성당의 공명보다는 작은 공간에 어울릴법한 음향. 다성 합창과 더불어 3성부 같은 소규모 편성을 전제한 형식들. 이것은 단순한 양식 변화가 아니라, 당시 미사가 봉헌되던 현실적 환경의 반영이었다.



「그라두알리아」에 실린 부활 입당송 〈나는 부활하였다(Resurrexi)〉를 들어본다. 5성부로 쓰인 이 작품은 은밀한 전례 속에서도 부활의 충만함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나는 부활하였고, 지금 너와 함께 있노라. 알렐루야.” 박해받는 공동체가 가사를 부를 때, 이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었으리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핍박받는 우리와 함께 현존하신다는 위로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버드 연구자 케리 매카시는 이 곡이 거침없는 비상이 아닌, 주저와 반복을 거쳐 비로소 부활에 도달하는 음악처럼 보인다고 썼다. 그래서일까. 버드의 입당송은 부활의 승리보다는, 사라지지 않는 것, 끊어낼 수 없는 것, 종국에는 살아남는 선율처럼 들린다.


이는 400년 전 역사로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지하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공동체들이 있다. 감시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 중국과 북한 그리고 다른 어딘가에서. 그들은 버드와 가넷 신부가 그랬듯 어둠 속 희망을 부여잡으며 성체를 나누고 같은 노래를 부를 것이다.


Resurrexi, et adhuc tecum sum, Alleluia.


나는 부활하였고, 지금 너와 함께 있노라. 알렐루야.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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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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