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프랑스 작곡가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Marc-Antoine Charpentier· 1643?~1704)의 음악에는 두 가지 결이 존재한다. 하나는 루이 14세 시대 문화의 영향을 받은 장엄함이고, 다른 하나는 내밀하고도 영적인 교회음악을 향한 감각이다. 그 가운데 〈포르루아얄을 위한 미사(Messe pour le Port-Royal)〉는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미사는 1687년 7월 20일, 파리 포르루아얄 공동체를 위해서 작곡되었다고 추정된다. 병에서 회복된 프랑수아 드 알레 대주교를 위한 감사의 의미와, 대주교의 여동생이자 수녀원장이었던 마르가리타 드 알레의 영명 축일이 겹친 자리였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미사 구조에 있다. 입당송, 화답송, 봉헌송, 영성체송에 해당하는 부분이 두 세트로 제시되어, 상황에 따라 성 프란치스코 혹은 성 마르가리타를 축일별로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오빠 프랑수아, 곧 프란치스코와 누이 마르가리타의 이름이 구조 속에 중첩된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미사가 복수의 의미와 용도를 수용하도록 짜여 있는 셈이다.
음악적 구성 역시 독특하다. 세 명의 소프라노와 여성 합창 그리고 통주저음으로 이루어진 편성은 극도로 절제되면서도 투명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과시하지 않는 소박한 선율이 중심을 이루고, 오르간 역시 절제되어 사용된다.
이 곡의 배경으로 우선 ‘얀세니즘(Jansenism)’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는 벨기에 지역인 이프르의 주교이자 루뱅대학교 교수였던 코르넬리우스 얀센의 저작에서 출발한 신학적 흐름으로, 성 아우구스티노의 은총론을 강조하며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 의지보다 하느님 은총의 절대성을 부각했다. 얀세니즘은 교회와 왕권에 의해 반복적으로 단죄·탄압되고 18세기 해체되었지만, 그 엄격한 은총 중심의 영성은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잔존했다.
작품이 연결되는 지점은 흔히 떠올리는 얀세니즘의 본거지 포르루아얄 데샹(Port Royal des Champs)이 아니라, 파리 포르루아얄이다. 두 공동체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1668년 이후 다른 길을 걷는다. 즉 우리가 기억하는 ‘얀세니즘’ 이미지는 포르루아얄 데샹에 더 강하게 남아 있지만, 미사가 울려 퍼졌던 파리 포르루아얄은 왕권과 교권의 질서 속에서 일정 부분 재편된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음악에서 느껴지는 얀세니즘의 잔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성 수도회와 공동체를 염두에 둔 소프라노 중심의 편성, 과장되지 않은 음색은 당시 얀세니즘이 품고 있던 방향성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제 그 이름이 남아 있는 장소로 시선을 옮긴다. 얀세니즘의 중심지 포르루아얄 데샹을 찾았던 것은 늦가을이었다.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에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도시 경계가 끊기는 지점부터 풍경은 달라진다. 길은 조용해지고, 사람의 흔적은 희미해진다. 안내 표지조차 드물고, 주변은 지나치게 고요하다. 그렇게 홀로 걷다가, 확신이 사라질 무렵 포르루아얄 데샹 국립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편에서 계속〉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