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허스트 작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년)와 앞쪽 두개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년).
국내 주요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잇달아 개막했다. 신앙이 사회의 중심이었던 16세기부터 과학과 물질에 그 자리를 내어준 듯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다른 시대와 당대의 작가가 담아낸 종교가 이색적이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 전이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리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 톨레도 미술관이 소장한 렘브란트·고야·다비드·터너 등 유럽 회화사의 변곡점으로 거론되는 거장들의 작품 5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는 크게 5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16세기 중반~19세기 중반, 즉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로코코·신고전주의·낭만주의에 이르는 예술사조와 함께 시대와 철학, 사회적 맥락에 따라 작품의 주제와 표현 방식이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엘 그레코 작 ‘겟세마니의 기도’ 1590~1595년 경. ⓒ 2026 Toledo Museum of Art. All rights reserved.
사순을 거쳐 부활 시기에 접어든 만큼 이 가운데 스페인 종교미술의 토대를 마련한 엘 그레코의 ‘겟세마니의 기도’가 눈에 띈다. 네 복음서를 통합해 예수님이 체포되기 직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드린 기도를 시각적으로 해석했다. 그림 오른편에는 유다와 성전 경비병이 예수님을 향해 다가오는가 하면, 왼편의 깊이 잠든 베드로·야고보·요한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낸다. 무릎을 꿇은 채 길게 늘어난 예수님의 신체는 내면의 갈등과 영적 고양을 표현하고, 왼쪽 상단의 천사는 십자가 수난을 상징하는 금잔을 건네며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 요동치는 하늘, 전체적으로 황금·은·붉은색이 뒤섞인 강렬한 색채 대비는 인간의 고통과 신성의 초월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 속 그리스도와 로마군 백인대장의 이야기를 르네상스 특유의 방식인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한 파올로 베로네제의 ‘그리스도와 백인대장’,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프란체스코 살비아티의 ‘성가정과 세례자 요한’, 우르바노 8세 교황의 조카로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한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에게 의뢰한 ‘성모 마리아에게 까말돌리 수도회 회칙을 봉헌하는 성 베드로 다미아노’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이어진다.
데이미언 허스트 작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2007년.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영국 출신 데이미언 허스트의 개인전이 시작됐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허스트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35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현대미술계에서 다채로운 해석과 평가를 받아온 허스트는 아름다움과 종교·과학·삶과 죽음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 왔다. 의외로 상당수 작품의 오브제가 그리스도인에게 친숙한 이유는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한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과거 종교의 자리를 현대 의학과 자본이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체 4부 가운데 3부 ‘침묵의 사치’에서 과학과 종교, 예술의 복잡한 관계를 다룬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인간의 영혼과 부활을 상징하는 수천 마리의 나비를 사용해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삼면화,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8600여 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신의 사랑을 위하여’, 산 채로 살갗이 벗겨진 사도의 모습을 담은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등이다. 6월 28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