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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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샤르팡티에의 〈포르루아얄을 위한 미사〉와 포르루아얄 데샹 방문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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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세니즘의 본거지, 포르루아얄 데샹 국립박물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프랑스의 전형적인 샤토(ch?teau), 즉 아담한 성이나 대저택 정도 크기다. 하지만 소박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전시장을 둘러보니 성 아우구스티노에 관한 문헌과 도판들이 빼곡하다. 「신국론」, 「삼위일체론」 등 성인의 방대한 저작 중에도 유독 얀세니스트들이 집중한 저서는 「고백록」이었다. 다채롭게 진열된 「고백록」 판본들은 공동체에서 성인이 가졌던 절대적 위상을 실감하게 한다.


그렇다면, 얀세니즘의 자취를 되짚어보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는 오늘의 신앙을 비추는 거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 얀세니즘뿐만 아니라 현대의 변형된 ‘신(新) 얀세니즘’까지 경계하셨다. 교황께서는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에서 얀세니스트들이 인간적, 정서적, 육체적인 것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았다고 지적하며, 이를 그릇된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한다.(86항) 또한 현대화된 얀세니즘이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는 이원론과 영지주의의 재연으로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음을 강조했다.(87항)


실제로 오늘날 얀세니즘은 다양한 얼굴로 분화될 수 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대한 회의, 육체를 멸시하는 영육 이원론, 선행이나 능동적 실천조차 무용하다고 여기는 냉소주의, 타자에게 배타적인 근본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향들은 현대인의 신앙 및 영성에 균열을 유발하는 독소이기도 하다.



둘째, 이는 한국 천주교회사와도 맞닿아 있다. 얀세니즘 특유의 엄격주의(Rigorism)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MEP)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 천주교회에도 간접적으로 투영되었다. 선교 사제들의 숭고하고도 투철한 의지와 청빈한 영성은 박해 시기 신앙을 지탱하는 동인이 되었으나, 초기 한국교회의 영적 기저에 다소 엄격하고도 금욕적인 정서를 남기기도 했다.


전시된 교본 등을 통해 얀세니스트들이 심혈을 기울였던 교육의 흔적도 보인다. 비록 체계적인 교육 지침서를 통해 인문·자연과학·천문학까지 아우르는 당대 예수회식 첨단 교육의 위세를 당해낼 순 없었으나, 그들은 독자적인 학업 시스템을 구축하며 인재 육성을 이어갔다. 얀세니스트들과 대립했던 예수회를 풍자하고 희화화한 그림들 앞에서는 당시 첨예했던 갈등 상황도 읽을 수 있다.



대표적 얀세니스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코너는 박물관의 백미다. 그의 초상과 저서 사이에서 「팡세」의 단장들을 떠올린다. 파스칼은 몇몇 부분에 A.P.R. 표식을 남겼는데, 이는 ‘포르루아얄에서(? Port-Royal)’의 약어로 추정된다. A.P.R.이 붙은, 그러니까 그가 포르루아얄에서 쓴 문장을 인용해 본다. “인간은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인간은 비참하기에 비참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진정 위대하다.”(라퓌마 판본 122)


1709년 루이 14세에 의해 폐쇄되고 파괴된 포르루아얄 데샹. 박물관을 나와 옛 수도원 터를 둘러보니 덩그러니 남은 채마밭만이 과거 영화를 짐작하게 한다. 오후 1시 반에 입장해 폐관 시간까지 방문자는 나 혼자였다.


방문일이 월요일임을 고려하더라도 이토록 적막할 수 있을까. 하기야 요즘 얀세니즘에 누가 깊은 관심을 두겠는가. 하지만 샤르팡티에가 남긴 미사곡 선율처럼, 그 열렬한 영성의 뿌리는 포르루아얄 폐허 아래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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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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