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시절 연주하며 만난 아내
지금도 그의 눈이 되어
연간 100회 클래식 연주 무대
“상처 있는 이에게 힘 되고 싶다”
봄꽃들의 향연이 시작된 3월 말, 서울의 한 기업에서 열린 클래식 연주회에 찾아갔다. 귀로 듣는 레퍼토리는 익숙한데, 눈으로 보는 모습은 여느 무대와 다르다. 악기 편성이 미흡한 데다 지휘자는 물론 보면대도 보이지 않는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긴밀하게 호흡해야 할 단원 상당수는 눈을 꼭 감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 그 가운데 안내견도 있다.
“지휘자의 손동작이 저희 오케스트라에는 소용이 없잖아요. 제가 목소리 등으로 단원들을 리드하는데, 연습 때 약속을 많이 해요. 어느 한 부분이 안 맞아도 모든 단원이 맞출 때까지 지루한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고요. 악보를 다 외우지만, 악보에 음표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지시 사항을 저도 자꾸 잊어버리니까 그런 부분이 어렵죠.”
리시버 귀에 꽂고 ‘들리는 지휘’ 집중
시각장애 연주자들로 구성된 ‘한빛예술단’의 김종훈(미카엘) 음악감독이다. 반복적인 청음과 암기로 악보를 익힌 단원들은 귀에 꽂은 리시버로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한 김 감독의 음성·호흡·악기 소리, 즉 ‘들리는 지휘’에 집중한다.
그런데 연주는 단기간의 연습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특히 현악기의 경우 왼손과 오른손이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데다, 운지 및 활의 위치나 각도가 조금만 달라도 음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암보보다 어떻게 악기를 익혔는지 궁금했다.
선천성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고도 약시를 안고 태어난 김 감독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몸으로 악기를 익혔다. 그의 어머니는 잘 보이지 않는 아들을 위해 매번 커다란 달력 뒷면에 손수 악보를 그렸다. 전국 콩쿠르에 우승한 그는 한양대 음대를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 음대를 최고 성적으로 졸업했다. 엄격한 틀이 있는 클래식계에서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방증이다.
“여러 번 너무나 깊은 절망의 골짜기에 있었어요. 스스로 재능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걸 다 잃더라도 제일 소중한 건 어떻게든 구한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했어요. 그런데도 ‘나는 여기까지인가, 더 이상은 안 되나’ 이런 생각이 들 때 참 많이 절망했어요. 또 악기는 자세가 중요하잖아요. 신체 여러 부분이 협조해서 다양한 느낌의 음악이 연주되는데, 눈으로 못 배워서 너무 답답했죠. 어떻게 하면 저런 소리, 저런 느낌의 음악이 나오는지 궁금한데, 그렇다고 다른 연주자들을 손으로 다 만져볼 수도 없고요.”
김종훈 감독 뒤에는 무대에서도 가정에서도 항상 그의 눈이 되어주는 아내 김영아(맨왼쪽)씨가 있다.
신앙과 반려자, 고난 속에서 찾은 빛
악기를 연주하는 탈렌트는 타고났으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인 시력에 장애가 있으니 늘 한계를 마주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유학 시절 그의 좌절감은 증폭했다. 지금처럼 우리나라가 세계 사회에 알려지거나 스마트폰으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다.
“그렇게 고생할 줄 미리 알았다면 안 갔을 거예요.(웃음) 무엇보다 음악 공부가 잘 안 될 때 제일 힘들었어요. 삶의 힘든 부분은 이겨내 왔는데, ‘음악적으로 조금 더 잘했으면, 예술적으로 좀더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벽을 만나면 낙심하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신앙이 제대로 자리 잡기도 했어요. ‘누구한테도 못하는 얘기를 쉬지 않고 들어주는 분이 계시구나, 내가 잊어도 항상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 있구나’ 느꼈거든요. 절망 속에서 마음을 담아 기도하듯이 연주하면 누군가 들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마음을 담아서 소리를 만들고, 그게 공부가 되고, 뭔가 새로운 길을 찾게 됐어요.”
그 수렁 속에서 아내 김영아(라파엘라)씨도 만났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우리 대학교에서 바이올린을 하는 한국 학생이 저희 둘뿐이었어요. 현악 4중주를 하면서 자주 만나게 됐고, 대화가 잘 됐어요. 아내는 저의 어떤 장애도 크게 생각하지 않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이라는 게 학생 때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잖아요. 많이 고생했죠. 지금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도 아내가 정말 많은 일을 해요. 단원들 자세 교정하는 것부터 여러 세부적인 것을 다 지도하고, 연주 때도 제 뒷자리에 앉아서 저의 눈이 되어주거든요. 너무 감사하고 미안하고, 아내에게 진 빚은 평생 못 갚을 거예요. 하느님이 대신 갚아주셔야 해요.(웃음)”
시각장애 연주자들로 구성된 한빛예술단.
“장애는 극복되지 않지만 함께”
심각한 장애에도 연주자로 성공하고, 절망 속에서 신앙이 단단해지고, 나락에서 반려자를 만난 얼핏 영화 같은 삶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장애는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감사할 일이 많지만, 좌절과 낙심의 연속이라고.
“제가 늘 연주자로만 인생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아빠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한데, 그런 것들이 너무 역부족이다 싶을 때 많이 낙심하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떨 때는 돌덩이 같은, 짐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잖아요.”
장애를 떠나 누구나 이런 생각에 움츠러들 때가 있다. 한빛예술단 단원들이 입장할 때면 앞이 보이는 이가 선두에 서고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일렬로 걸어 들어온다. 비장애인 스태프들이 간격 등을 조정하고, 단원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우리 모두 도움을 잘 주는 것도, 또 잘 받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들이 뭔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편견을 받기도 하는데, 연주를 다니면서 그런 편견은 잘 못 느껴요. 어려운 점은 우리 스스로 나약해지거나 나태해지는 거예요. 자꾸 옆에서 도와주니까 너무 수동적으로 될 때가 있거든요. 저도 그런 순간이 많은데, 유학 때 길을 찾는데 아래쪽에서 ‘도와드릴까요?’하는 소리가 났어요. 휠체어를 탄 분이 다가온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장애인이라고 도움만 받고 살면 안 되겠다!”
그런 마음이 모여 2003년 창단한 한빛예술단은 2014년 소치 동계패럴림픽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 축하 공연,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폐막식을 비롯해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등 연간 100회가 넘는 무대를 소화하고 있다.
‘카메라 마사지’라는 표현이 있다. 사진이나 동영상 안의 자신을 보며 메이크업이나 표정 등을 바로잡다 보면 더 나은 외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의 경우 스스로 자신의 외모나 표정을 관리하기 힘들다. 그래서 연주보다 더 놀란 점이 김 감독의 인상이었다. 숱한 절망과 어려움 속에서도 평소 어떤 생각과 마음을 길어올리면 이렇게 온화하고 맑은 표정을 짓게 될까.
“저도 낙심했다가, 원망도 했다가, 또 어떨 때는 기뻐서 감사의 기도도 올리고 반복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쉬운 길도 우리처럼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은 너무 어렵잖아요. ‘하느님이 잘 붙들고 가라고 이런 삶을 주시는구나’ 더 의지하게 되고, 스스로 위로하고 다짐하는 거죠. 어려운 과정일수록 더 긴장하고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지혜도 주시고 새로운 힘도 주시잖아요. 우리 오케스트라도 개인 기량은 뛰어나지 않지만, 서로 배려하고, 서로의 소리를 들으면서 맞추고, 마음을 담아서 연주하기 때문에 더 큰 울림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연주를 통해 특히 어려움을 겪고 마음에 상처가 있는 분들이 힘과 용기를 얻고 치유가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