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판화의 선구자 김상유(요한 사도·1926~2002)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4월 1일부터 작가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전시회를 열고 있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30대 중반에 독학으로 화가가 됐다. 1960년대 초 국내에서 최초로 동판화를 시도하며 한국 판화의 지평을 열었다. 독자적 실험과 성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목판화와 유화로 영역을 확장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생전 배우자 고(故) 곽영옥(요안나) 씨와 함께 서울대교구 여의도동본당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 15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다. 총 6개 장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작가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구성해 그의 삶과 예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동판화를 비롯해 목판화, 유화도 포함됐다.
작품과 함께 작가가 사용한 예술 도구와 유품, 전시 도록, 기사 등도 선보인다. 동판화와 목판화 제작 과정도 소개돼, 작가가 어떻게 자신만의 판화 세계를 구축해 나갔는지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는 그룹 BTS의 RM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개하며 화제를 모은 작가의 <대산루> 시리즈도 공개됐다. 작품은 작가가 직접 전국의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만난 한국의 시간을 담고 있다. 고요하면서도 깊이 있는 화면 구성은 작가 특유의 사유와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화려함보다 비움의 길을 택한다. 화면은 절제되고 단순하며, 선과 면은 그 안에서 반복된다. 이는 평생 외부와 고립된 채 자기만의 리듬을 유지하며 작업해 온 작가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작가는 실명의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칼과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
전시에서는 황창연 신부(베네딕토·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관장)와 나태주 시인, 조희숙 셰프 등 종교·문화계 인사들이 ‘쉽게 닳지 않는 삶’을 주제로 남긴 글도 함께 소개된다.
작가의 삶과 작품은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로 가득 찬 오늘날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조용한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쉽게 닳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전시는 8월 17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는 2만 원. 매주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