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수행하듯 작업해 온 두 작가의 신앙과 예술 세계가 서울대교구 내 성지 박물관에 나란히 펼쳐졌다.
이승원 작가 ‘영원을 향한 시간’
이승원(마르타, 80) 작가 초대전 ‘영원을 향한 시간’은 절두산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에서 정통 금속공예를 배운 작가는 1979년 귀국해 국내 금속공예 1세대 작가들과 함께 활동했다. 유학 시절부터 금속공예와 함께 모시·삼베·창호지·옻칠 등 우리나라 전통 소재에 관심을 두고 서구적인 조형미에 한국적인 정서를 이질감 없이 조화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뉘른베르크 미술대학 아카데미상을 연속 수상했고, 1992년 국제 은공예 트리엔날레에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성미술품 및 생활과 밀접한 작품들을 창작해 왔고, 공예에서 저변을 확장해 옻칠화 작업을 해왔다.
이승원 작가 초대전 '영원을 향한 시간' 전경.
이번 전시에서는 금속공예에서 출발해 옻칠을 매개로 영역을 확장해 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조명한다. 특히 신앙에 대한 성찰과 성경 묵상을 바탕으로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시간이 담겨 있는 작품들로, 옻칠화·설치·성물·금속공예 작품 총 60여 점이 소개된다.
옻칠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서양의 유화가 색을 칠하고 마르면 그 위에 또 다른 색을 덮어 전체적인 색채의 균형을 맞춘다면 옻칠은 바탕 효과를 예상하면서 칠을 반복한다. 유화는 색칠의 효과를 비교적 빠르게 확인할 수 있지만, 옻칠은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 칠을 하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며칠간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후 마지막 부분에서 표면을 사포로 갈아내야만 은은한 광택과 깊이감을 얻을 수 있다.
작가는 “수 개월 동안 수십 차례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옻칠 작업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묵상을 반복하는 구도의 삶과 닮아있다”며 “겹겹이 쌓을수록 고운 색채에 옻 특유의 무게감이 드러나는 옻칠 작품처럼 우리의 기도가 켜켜이 쌓여 영원을 향한 깊이 있는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원 작 ‘은총의 나무’
관장 원종현 신부도 “시간과 재료의 축적이라는 옻칠 작업으로 창작된 작품을 통해 작품의 표면을 넘어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신앙적 사유의 층위를 함께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덕성여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한 작가는 독일 뉘른베르크 미술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수학했다. 원광대와 청주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서울·의정부 가르멜 여자 수도원, 제주 성클라라 수도회 성당,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청량리성당,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승원 작 '마리아'
한편 작가는 이번 전시가 끝난 뒤 출품 작품과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성물과 금속공예품 등의 기증을 박물관 측과 협의하고 있다. 작가의 대표작이 포함돼 있어 교회 미술로서의 예술 가치와 전례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이어진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142-4504
안병철 작 ‘생명-영(影) XIX 4’
조각가 안병철 ‘물성에서 생명으로’
조각가 안병철(베드로, 69) 개인전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전시 제목은 ‘안병철: 물성에서 생명으로’. 초창기 조각·입체 작품부터 최근의 한지 작업까지 40년에 걸친 작업 변천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1980~1990년대 한국 조각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작가의 미공개 초기작을 시작으로 대립하는 두 세계 사이의 경계를 은유한 ‘문’ 연작, 자연·인간·순환의 질서를 탐구한 ‘생명’ 연작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부친인 1세대 근대 조각가 안찬주 선생의 작품도 최초로 공개한다.
안병철 작 ‘Flow of Life IV’
작가는 철·스테인리스·브론즈·한지 등 전통적인 조각 재료의 물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미니멀하고 기하학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다. 특히 형태를 단순화해 본질을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생명의 기원’ 연작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생명-영(影)’ 작품은 모든 세부 묘사를 덜어내고 매끈하게 연마되어 잘 닦인 거울 표면으로 빛과 공간, 관람자를 끌어들이며 작품 안에 비친 관람자 스스로를 마주 보게 한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외형을 넘어 움트는 생명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 시간의 흐름이 빚어낸 순환의 흔적은 작품의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관람자의 감각과 내면에 스며든다.
작품을 통해 수행하는 수도자에 본인을 비유하기도 한 작가는 “작가와 작품은 서로를 비추며 결국 닮아가는 존재”라며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느끼고 배우며 깊은 성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정을 그려낸다”고 말했다.
안병철 작 '생명-기원 VIII'
서울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공부한 작가는 서울시립대 조각학과 교수 및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지냈다. 1988년 경기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서울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수원 올림픽기념조각공원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30일까지 매일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147-2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