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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창조’라는 거대한 물음표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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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는 인간 생명이 하느님께서 직접 주신 것이기에 그 누구도 생명을 함부로 만들거나 없앨 권리가 없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생명을 제거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된다. 이는 살인과 같은 직접적인 범죄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낙태는 물론이고, 무관심 속에서 죽어가는 이웃을 외면하는 것 또한 중대한 죄악에 속한다.

전쟁과 테러가 특히 심각한 범죄로 규정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싸우는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아이들과 민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을 학살하거나 특정 민족을 한 지역에 가두어 굶겨 죽이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생명을 빼앗는 행위’만큼 큰 문제가 ‘생명을 만드는 권리’다. 생명 창조의 문제는 과학이나 윤리 중 하나로만 재단할 수 없다. 인류는 오랫동안 생명을 신의 고유한 권능으로 여겨왔지만, 동시에 그 신의 영역에 다가가고자 끊임없이 시도해왔다.

1828년 프리드리히 뵐러는 무기물인 시아네이트 암모늄에서 유기물인 요소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실험은 ‘유기물은 생명체 안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당시의 절대 명제를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이후 과학계는 생명이 신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자연적 과정 속에서 우연히 형성되었다는 가설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기 시작했다. 오파린–홀데인 가설과 밀러–유리의 실험을 거치며, 이러한 관점은 점차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1818년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에서 문학적으로 꿈틀거리던 생명 창조의 욕망은 과학적 가능성이 제시되자 현실 문제로 급부상했다. 물론 생명을 만들어냈다면 그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보살펴야 한다는 윤리적 성찰도 함께 제기됐다. 그러나 저지른 뒤에 수습하려는 인간 습성으로 윤리보다는 기술 개발에 더 많은 힘을 쏟아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분기점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의 출범과 범용 AI의 도래를 앞두고, AI가 새로운 생명의 기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구글의 수석 AI 비저너리인 레이 커즈와일 박사는 2005년 출간한 「특이점이 온다」에서 이미 AI가 등장하고, 이것이 일종의 새로운 생명체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로봇에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결합해 그것이 ‘생명’이라 불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면, 현세 인류는 과연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될까. 미래학자들의 전망은 극명하게 갈린다. 인류의 대부분이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 소수의 관리자와 자본가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비관론과, 산업혁명 당시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며 일어났던 러다이트 운동이 결국 기우로 판명되었듯, 인간은 새로운 역할을 찾아 균형을 회복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팽히 맞선다. 확실한 것은 주님께서는 생명을 함부로 만들지도 빼앗지도 말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주님 말씀을 어떻게 슬기롭게 받아들일지가 몹시도 중요한 때라고 하겠다.

1828년 하인리히 마슈너는 오페라 ‘흡혈귀’에서 인간이 만든 생명에 대한 존재와 이에 대한 윤리적 충돌을 그렸다. 주님의 입과 귀가 되는 예술가의 선지적인 면모가 놀랍다.



오페라 ‘흡혈귀’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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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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