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연 신부의 신앙 특강] (4, 끝)
cpbc 가톨릭평화방송은 5월 성모 성월을 맞아 특강을 기획했다. 황창연(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관장) 신부가 강사로 나서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주제로 4차례에 걸쳐 강의한다. 본지를 이를 요약 정리해 과달루페 성모 발현 이야기와 의미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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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 그 뜻을 되새기며
우리는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은총이 가득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은총이란 아름다움의 눈부신 매력, 내적인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광휘(빛)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성모님은 그 최고의 은총을 받으신 분이다. 그렇다면 성모님이 은총을 받으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 이유를 제대로 안다면 우리도 은총을 받는 삶을 살 수 있다. 4강은 성모님의 삶 안에서 은총의 조건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첫 번째 조건: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 열여섯 살 처녀 마리아의 반응은 흥분도 들뜸도 아니었다. 성경은 이렇게 전한다. "그 말뜻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우리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난다면 어떻겠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두방정을 떨고, 온 세상에 알릴 소식이라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달려가 자신이 특별히 선택된 사람인 양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주 차분했다.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용히, 깊이 생각했다.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첫 번째 조건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색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분명 기회를 주시고 때로는 채찍질을 치실 때도 있다. 그때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고 계신가. 어떻게 살아야 은총 안에서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허송세월하는 삶은 1년을 100년처럼 살아내는 삶이 될 수 없다.
두 번째 조건: 긍정적인 말과 생각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열여섯 살 처녀에게 임신을 고하는 이 말씀은 어처구니없어도 한참 어처구니없는 선언이었다.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가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당시 유다법으로 돌로 쳐 죽이는 중죄였다. 육체적 죽음과 정신적 죽음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요구였다. 마리아는 조용히 물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천사는 답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결심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한 마디가 최고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말씀이었다. 만약 마리아가 납득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늘나라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과 삶의 방식이야말로 은총을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성경은 말과 생각의 방향이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모세는 이집트를 탈출한 뒤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돌아보고 온 열 명의 보고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도저히 올라가지 못한다면서 자기들이 가서 정탐한 고장은 사람이 살지 못할 곳이라는 소문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퍼뜨렸다. 우리가 정탐하고 온 땅에 들어가 살려다가는 도리어 잡혀먹힐 것이다. 거기에는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 있더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 사람들 보기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온 회중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 위에 들어가게 하시며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결국 부정적인 열 명의 말을 따랐던 60만 명은 광야에서 죽었고,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가나안 땅에 입성했다. 은총이 있는 사람은 똑같은 장소와 시간에 있어도 밝은 면을 바라보고, 은총이 없는 사람은 어두운 면을 바라본다. 긍정적인 말과 생각은 하느님이 기뻐 여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늘 함께하시는 역사(役事)다.
세 번째 조건: 하느님의 뜻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마리아는 그 어렵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먼저 엘리사벳을 찾아갔다. 나이 들어 임신한 친척을 위로하기 위해 무려 석 달을 함께 머물렀다. 도저히 아기를 가질 수 없었던 늙은 엘리사벳과, 도저히 아기를 가질 수 없어야 할 처녀 마리아. 이 두 분의 마음고생은 누구보다도 깊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처지에서 마리아는 먼저 엘리사벳을 찾아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다.
엘리사벳은 이렇게 화답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힘들 때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사람에게서 은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성모님은 당신만 잘난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이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며 모두를 이기게 해 주시는 분이었다.
네 번째 조건: 찬미하는 삶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있다.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이다. 임신한 처녀의 불안한 처지에서, 죽음의 위협 앞에서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우리는 찬양보다 바람이 훨씬 많다. 이것 해 주세요, 저것 해 주세요 — 하느님께 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마음이 설렌다는 표현,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인가.
생명을 부여받은 것, 푸른 산과 하얀 눈, 빗소리와 폭포 소리와 단풍,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 그릴 줄 아는 재능, 공짜로 내려주시는 공기와 하늘과 비와 햇빛 —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을 생각하면 어찌 가슴이 설레지 않겠는가. 찬미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찬미하는 사람만이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다. 맨날 달라고 청하는 사람은 찬미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은총도 덜 받는 것이다.
다섯 번째 조건: 이웃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삶
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의 모습이 빛난다. 잔치를 즐기던 성모님은 가만히 살펴보다가 술이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주인의 마음으로 그 어려운 처지를 걱정하며 아들 예수님께 조용히 고했다. 새침하게 차려 놓은 음식만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성모님은 남의 어려운 처지를 걱정해 주고,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려 하신 분이었다. 남의 일을 걱정해 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삶이야말로 축복된 삶, 천당에 갈 수밖에 없는 삶이다.
예수님도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돌로 치려는 군중 앞에서 어느 누구도 질책하지 않으시고 서로를 뒤돌아보게 하셨다. 여인을 고발하던 이들이 모두 사라진 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들이 네 죄를 묻지 않았다면,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예수님은 승승승(勝勝勝)의 사랑 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성모님도 마찬가지이셨다. 당신만 잘난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모든 이를 이기게 해 주시는 분이었다.
은총 가득한 삶이란
성모님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은총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곰곰이 생각하고 사색하는 사람. 둘째, 긍정적인 말과 생각으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셋째, 하느님의 뜻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위로가 되는 사람. 넷째, 청하기에 앞서 찬미하는 사람. 다섯째, 이웃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걱정하고 실질적으로 돕는 사람.
가브리엘 천사의 고지에 마리아가 드렸던 그 한 마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이 말씀이야말로 은총 가득한 삶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삶이란, 결국 성모님처럼 생각하고 성모님처럼 말하며 성모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그렇게 살 때 우리도 은총이 가득한 사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