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노력과 순수한 정신에서 이루어진 예술은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다. 완당(阮堂)과 세잔의 예술이 공통성을 갖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보편적 진리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우성(又誠) 김종영(프란치스코, 1915~1982)의 예술 세계를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정신적 계보 속에서 조명하는 전시 ‘완당과 우성’이 6월 21일까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린다.
완당은 흔히 추사로 알려진 서예가 김정희의 또 다른 호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한 김종영 작가는 1980년 8월 정년 퇴임 후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을 찾았다. 김 작가는 지갑에서 오천 원권 지폐 두 장을 꺼낸 뒤 두 번 절을 올렸다. 곁에 있던 아내가 놀라자 그는 “선생님 앞이라 절을 올린 것이오”라고 말했다.
‘완당과 우성’ 전시는 이 일화에서 출발한다. 조선 후기 서예가와 20세기 조각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부친에게 한학과 서예를 배운 김 작가에게 완당은 예술적 뿌리에 가까웠다. 그는 완당이 남긴 서예를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 방향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유행에 기대지 않고, 전통을 깊이 익힌 뒤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 갔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전시는 편지와 서첩, 서예, 수상록(隨想錄) 등을 통해 김 작가가 완당을 평생 마음의 스승으로 삼은 이유와 작품의 변화 과정 등을 함께 살핀다. 전시에는 선대부터 소장해 온 완당의 작품도 공개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김 작가가 생전 직접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이라는 제목을 붙인 김정희의 친필 서첩이다. 예서와 해서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이 서첩은 선대부터 전해진 완당 관련 소장품 가운데 김 작가가 평생 손에서 놓지 않은 애장품이었다. 그는 서첩을 따라 쓰며 완당의 글씨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익혔다.
이번 전시는 김 작가의 추상 조각을 전통과 동떨어진 현대미술로 해석하는 시선에도 질문을 던진다. 완당이 옛 법을 익힌 뒤 자기만의 글씨를 완성했듯, 김 작가도 서예와 독서, 사유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각 언어를 찾아갔다. 관람객은 전시를 통해 김 작가의 작품 뒤에 놓인 자기 성찰과 완당을 향한 깊은 경모(敬慕)를 함께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