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에 참여한 유가족들이 예술 심리치료사 이선주씨(가운데)와 함께 포옹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있다.
“각자가 겪는 슬픔은 저마다의 고유한 무게가 있음을 알고, 누구의 고통이 더 큰지 가늠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는 회복의 과정을 묵묵히 응원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가족을 자살로 떠나보낸 이들의 나지막한 기도 소리가 21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소회의실을 채웠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가 마련한 자살 유가족 자조(自助) 모임 ‘슬픔 속 희망 찾기’ 풍경이다. 저마다 지닌 상실의 고통을 공유하고 연대하면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치유의 시간으로, 지난 3월부터 매달 한 차례 열리고 있다. 총 10개 반이 운영 중인 가운데, 이날은 예술 테라피(심리치료)반 모임이 진행됐다.
자조 모임 원칙은 서로 이야기를 경청하고 모든 감정을 수용하되, 결코 평가나 충고하지 않는 것. 남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가슴 깊이 묻은 슬픔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자리인 만큼 ‘죄송하다’는 사과도 금물이다.
이날 첫 활동은 각기 다른 색과 촉감의 천을 골라 흔들거나 껴안기도 하면서 느낀 바를 자유롭게 나누는 작업이었다. 파란 천을 쥔 한 참가자는 눈시울을 붉힌 채 “아들 입관식 때 입혔던 파란 한복이 떠올랐다”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은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다독이며 따뜻한 시선과 위로를 전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마음의 대화를 나눴다. 한 참가자는 “눈을 뚫어지게 맞추는 것도 조심스러운 요즘 세상인 만큼 처음엔 어색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돼 ‘그 마음이 곧 내 마음’임을 느낄 수 있었다”며 “옆에 계신 분들이 이렇게 하나같이 눈이 예쁜 줄 처음 알았다”고 미소 지었다.
하얀 도화지 앞으로 자리를 옮긴 참가자들은 이날 느낀 감정을 색과 단어로 표현했다. 동생이 생전 좋아하던 연초록빛 봄 풍경을 그린 누나부터, 아들이 다른 차원의 우주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광활한 우주를 그린 어머니까지. 저마다의 그림에는 짙은 그리움과 영원한 사랑이 배어 있었다. 이들은 평온함·생명력·축복 등 서로 그림을 보고 떠오른 단어를 적은 쪽지를 붙여주며 교감하기도 했다.
이날 모임은 예술 심리치료사 이선주(마리스텔라)씨가 직접 만든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분명히 있는데 보이지 않아. 사라진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떨어져 있어도 이어져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낭독이 끝나자 한 참가자가 촉촉한 눈빛으로 말했다.
“예전에는 슬픔을 지워야 할 부정적 감정이라 여겼어요. 하지만 이젠 압니다. 이 슬픔은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떠난 이에게 더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픈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