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블랴나 페스티벌 국제 콩쿠르 연주 사진. ⓒDarja Stravs Tisu, Ljubljana Festival
지나 바카우어 콩쿠르 3관왕
마포아트센터 상주음악가로 선정
6·7월에만 네 차례 국내 공연
‘한계를 넘어서’ 주제로 첫 무대
“빠른 결과 요구하는 시대지만
각자의 속도 모두 달라 …
결과만 보고 쉽게 지치지 말고
작은 즐거움과 좋아하는 마음
끝까지 붙잡기를”
올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이름에 음악이 가득한 선율(안토니오, 25세)씨다. 일찍부터 국내외 무대에서 꾸준한 성과를 이어왔던 그는 2024년 미국 ‘지나 바카우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청중상·학생심사위원상까지 3관왕을 기록했고,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또 올해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페스티벌 국제 콩쿠르’에서 2위 및 20세기 작품 최고연주상을 수상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6~7월에만 네 차례 국내 공연을 앞두고 있는 선율씨를 이메일로 만나봤다. 멀리 프랑스에서 띄운 편지다.
“본명입니다. 어머니께서 ‘율’이라는 이름을 꼭 짓고 싶으셨대요. 발음하기 어렵지 않다고 해서 해외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율’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본명인지부터 궁금했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선율이라는 이름은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된 셈이다.
한예종을 졸업한 그는 파리 스콜라 칸토룸과 에꼴 노르말 음악원에서 유학했다. 현재도 파리에 머물며 공연이 있을 때마다 여러 나라를 오가고 있다. 특히 올해 마포아트센터 상주음악가로 선정돼 6월 4일과 9월 16일 리사이틀, 11월 협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첫 무대에서는 ‘한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풀랑크의 ‘15개의 즉흥곡’과 리스트의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선보인다.
“상주음악가로 처음 활동하게 되었는데,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제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울 것 같은 작품들, 가장 하고 싶었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프랑스 레퍼토리도 넣고 싶었고, 테크닉이나 음악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국내외 또래에게는 K-POP이 훨씬 익숙할 것이다. 그 역시 K-POP을 즐겨 듣는다. 특성이 다를 뿐 음악이 가진 힘은 같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K-POP이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친구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도 해서 우리 음악이 전 세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저도 자연스레 많이 듣고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두 음악이 굉장히 다른 장르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K-POP이 시대의 감각과 에너지를 빠르게 담아내고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면, 클래식은 오랜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감정과 깊이를 전해 준다고 할까요. 장르보다는 음악 자체가 가진 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대와 세대를 넘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닿는 음악이라면 모두 의미 있다고 여깁니다.”
‘꿈’이라는 다소 거창한 단어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 고민하는 10~20대, 나이가 더해져도 해답을 얻지 못하는 이가 많다. 그런 차원에서 피아니스트라는 뚜렷한 꿈을 발견한 건 행운이 아닐까.
“어린 나이부터 좋아하는 일을 비교적 분명하게 알고 살아올 수 있었다는 점은 감사하죠. 또 음악을 하면서 만난 다양한 나라와 사람들, 무대에서 얻는 경험들이 저를 인간적으로도 성장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하지만 처음부터 거창한 꿈을 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는 단순히 피아노를 치는 시간이 좋았고, 음악 안에서는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물론 힘든 순간도 정말 많았습니다. 연습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고, 매일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요. 그런데도 결국 피아노 앞에 앉게 된 이유는 음악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명확한 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작은 관심이나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붙잡고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길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요.”
선율씨가 건반에서 손을 떼고 평범한 청년으로 미소 짓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25살, 한국에서는 아직 대학생이거나 취업준비생인 경우가 많다. 또래와는 상당히 다른 삶인 만큼 감내해야 하는 일상도 있다.
“가장 어려운 건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인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아주 섬세한 예술이라서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과 감정, 집중력까지 모두 연주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그래서 늘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게 돼요. 또 어린 시절부터 연습과 이동이 반복되다 보니 평범한 일상을 많이 포기해야 했습니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거나 쉬는 날 편하게 어딘가로 떠나는 아주 사소한 경험들도 사실은 많이 누리지 못했어요. 결국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직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 안에 있는 평범한 사람이고요.”
그의 답변을 확인하면서 생각이 정돈되고 성숙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역시 지속된 연마의 일환이 아닐까. 순간인 무대에서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연주 자체뿐 아니라 다양한 훈련이 필요하다.
“무대에서는 결국 숨길 수 없는 ‘지금의 나’가 드러납니다. 단순히 테크닉이나 연습량만으로 좋은 연주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느껴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어떤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지가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담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은 연주를 많이 듣고,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도 가지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려고 해요. 무엇보다 조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굉장히 긴 시간을 통해 깊어지는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부족한 점도 많고 경험해야 할 것도 많지만, 완벽해지려 하기보다 진실한 연주를 하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려고 합니다. 연주 전에 성호를 긋는 습관도 생겼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비우게 되는 시간인 것 같아요.”
31일 ‘청소년 주일’을 맞아 저마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후배들과 또래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부탁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오래된 성당들을 자주 방문했는데, 그 공간 안에 담긴 시간과 기도의 흔적들이 굉장히 깊게 다가왔습니다. 클래식 음악 역시 많은 부분이 신앙과 함께 발전해 온 역사 안에 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요. 지금은 빠르게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큰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쉽게 불안해지고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각자의 속도는 모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답을 찾지 못했다고 늦은 것도 아니고, 방황하는 시간 역시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오래 지켜갔으면 좋겠습니다. 결과만 바라보면 쉽게 지치게 되는데, 작은 즐거움과 좋아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 사람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있거든요.”
앞으로 훨씬 다양한 무대와 다채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율씨의 꿈과 바람을 들어본다.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배우고 새로운 작품과 무대에 도전하면서 성장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나 힘, 용기가 될 수 있는 음악을 오래 전하고 싶고요. 하지만 음악가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가 연주에도 드러난다고 느껴요. 그래서 단순히 잘 연주하는 사람보다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