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와 예수 성심의 관계는 17세기 후반 클로드 라 콜롱비에르 성인과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성녀에게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1549년 성 베드로 가니시오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구원의 물을 길어 마시는 샘’으로 보았다면, 또 다른 예수회원은 예수 성심을 성모 성심과 함께 자신의 내면에 모시는 환시를 경험했다. 바로 스페인의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Alfonso Rodriguez, 1532~1617)다.
그의 삶은 빛나는 이력, 뛰어난 학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아내와 세 아이를 연달아 잃는 불운을 겪은 뒤 예수회에 입회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이가 많고, 학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아 사제가 아닌 평수사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마요르카의 몬테시온 대학에서 46년간 문지기로 살았다. 그는 낮은 자리에서 일하며 깊은 내적 체험을 기록하거나 구술했다. 당대 여러 자서전이 그렇듯, 성인은 이를 삼인칭으로 증언한다.
“이 사람에게 일어난 일은 이러하였다. 하루는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영 안에서 성모님과 그분의 복되신 아드님께서 그에게 오셨다. 아드님은 어머니의 오른쪽에 계셨고, 그 복되신 아드님은 그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 잡으셨다. 그리고 동정녀께서는 또 다른 마음을 가져오셔서 그의 다른 쪽에 놓으셨고, 그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하여 두 분께서는 그의 안에 함께 머무르셨다.”
미술사가 호세 가메스 마르틴은 이를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 동시에 나타난 초기 예시라고 보며, 로드리게스 성인을 예수·성모 성심 신심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한다. 이런 흐름을 떠올리면,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이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이라는 전례적 배치도 새롭게 보인다.
17세기 인쇄 문화에서 ‘심장’과 ‘마음’의 신학이 글과 이미지로 확산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안톤 비에릭스 2세의 동판화 연작 <사랑하는 예수님께 봉헌된 마음(Cor Jesu amanti sacrum)>은 심장을 아기 예수께서 거하시는 처소로 그렸다. 예수회원 헤르만 휘호(Herman Hugo, 1588~1629)의 저서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도 비슷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영혼의 갈망과 내면의 정화를 ‘하트’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성심 신심과 친숙했던 예수회와 그와 관련된 시각 문화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예수 성심 호칭 기도’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한 사람이 만든 기도문이 아니라, 17~18세기의 여러 성심 호칭이 합쳐져 완성되었다. 그 주요한 뿌리 중 하나가 프랑스 예수회원 장 크루아제(Jean Croiset, 1656~1738)의 1691년 신심서에 수록된 호칭 기도였고, 훗날 33개 명칭으로 확장되어 1899년 레오 13세 교황의 승인을 받았다. 숫자는 그리스도의 생애 33년을 기념하는 뜻도 지닌다.
“죽기까지 순명하신 예수 성심, 창에 찔리신 예수 성심, 모든 위로의 샘이신 예수 성심,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 성심.”
이름을 하나씩 부르다 보면, 예수 성심은 추상적인 신심의 표지를 넘어 하나의 길이 된다. 창에 찔린 성심은 상처 입은 마음이면서 위로의 샘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한 마음이자 생명과 부활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