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마포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평화의 날’ 시사회 후 DMZ 생명평화순례 단장 이은형 신부와 이도경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경기 파주 임진각까지, 분단의 상징 비무장지대(DMZ)를 따라 385㎞를 순례한 종교인들과 시민들의 발걸음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탄생했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염원하는 육상·해상 순례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평화의 날’이 11일 서울 마포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시사회를 열고 관객들과 만났다. 시사회에는 진성준 국회의원과 장영달 전 국회의원 등 각계 인사를 비롯한 많은 시민이 찾아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다.
‘평화의 날’은 지난해 광복 및 분단 80주년을 맞아 진행된 ‘DMZ 생명평화순례’와 ‘평화의 배’ 항해를 기록했다. 천주교·불교·개신교·원불교 등 7대 종단 종교인들은 18박 19일 동안 DMZ 평화의 길을 따라 침묵 속에 걸으며 한반도 평화를 기도했다. 동시에 평화운동가들은 요트 ‘요나스웨일’을 타고 제주 강정항에서 출발해 서해안을 따라 임진강으로 향했다.
영화는 순례자들의 발걸음과 항해를 단순한 여정이 아니라 ‘평화를 향한 실천’으로 그려냈다. 육상 순례단은 돌산령과 평화의댐, 연강나루전망대, 북한군 묘지 등에서 종교별 위령제를 봉헌했고, 해상 순례단은 세월호 침몰 해역과 팽목항, 5·18 민주묘역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순례자들은 군부대 통제와 험난한 지형을 견뎌야 했고, 바다에서는 무풍과 엔진 고장, 어장 시설물이 항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영화가 비추는 것은 고난 자체보다 함께 걷는 이들의 연대다. 영화 속 순례 참가자들은 “혼자였다면 주저앉았을 길을 서로의 발걸음을 보며 걸어왔다”고 회고한다. 침묵 속 순례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평화의 길을 묻는 기도였으며, 서로 다른 종교 전통은 ‘한반도 평화’라는 하나의 지향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특히 영화는 분단의 상처와 세월호 참사를 한 화면 안에 담아냈다.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304송이 노란 국화를 바치는 장면은 평화가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희생된 생명을 기억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순례 과정 곳곳에서 등장하는 위령 의식은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상처와 적대의 기억을 치유하려는 몸짓으로 읽힌다.
시사회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순례단장 이은형(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연구소 소장) 신부는 “산티아고 길이 신앙의 길이라면, DMZ 평화의 길은 전 세계인이 함께 걸을 수 있는 평화의 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DMZ 인근 마을이 평화의 가치로 다시 활력을 찾도록 많은 이가 걸었으면 좋겠다”며 “진정한 평화가 이뤄지는 그 날까지 종교인들은 계속 이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연출을 맡은 이도경 감독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세계 청년들이 이 길을 걷고 교황님이 축복해준다면 한반도 평화가 세계적 화두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영화는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길 위에서 평화를 묻고, 함께 걷는 과정 자체가 평화의 시작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케냐 속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로 평화는 혼자 앞서가는 길이 아니라 서로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여정임을 밝힌다. 영화 말미 순례단은 임진각에서 서로를 끌어안으며 외친다. “적대를 멈추고 평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