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팔이 울린다. 트럼펫 선율이 높이 울려 퍼지고, 베이스가 단호한 어조로 노래한다.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나팔이 울리리라(The Trumpet Shall Sound)’다. 아리아는 독주 악기와 성악이 대등하게 경합하는 바로크 특유의 미학을 보여 주지만, 성악가와 트럼펫 연주자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기도 하다.
헨델은 텍스트의 음악적 묘사에 집중했다.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부분은 몸을 일으키는 듯한 상행 음형으로 표현하고, “썩지 않는(incorruptible)”은 반복된다. “변화되리라”와 “불멸”은 한 음절에 여러 음을 길게 늘여 부르는 멜리스마를 붙여, 순차적으로 펼쳐지는 변화와 영원성을 드러낸다. 가사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1코린 15,52-53 참조)
바오로 사도뿐 아니라, 초대 교회는 ‘썩음-소멸(φθορά)’과 이에 부정 접두사 ἀ를 붙인 ‘썩지 않음-불멸(ἀφθαρσία)’의 대비에 주목했다. 부패와 생명,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긴장은 이 대조 안에서 선명해졌다.
이는 고대·중세인의 죽음과 부패에 대한 개념과 함께 고려돼야 한다. 시신은 이내 형체를 잃고 역한 냄새를 풍긴다. 종교사학자 바이넘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부패’란 배설물 이상으로 혐오스럽고 불결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기억과 자기 정체성을 잃는 실존적 불안과도 직결되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옛사람들은 저승이나 지하 세계가 망자를 집어삼키거나 먹어 치우는 것으로도 보았다. 시편은 이에 맞선 부활의 희망을 드러낸다. “당신께서는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는 구렁을 아니 보게 하십니다.”(시편 16,10)
텍스트의 음악적 묘사 집중해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긴장 표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넘어 생명에 이르는 승리를 노래
스미르나의 주교 성 폴리카르포는 이런 믿음을 화형대 앞에서 고백했다. “제 영혼과 육신이 성령의 비부패성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 주는 부활에 이를 수 있도록, 순교자들의 대열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잔을 나누어 마실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폴리카르포 순교록」,14,2)
특히 “성령의 비부패성 안에서(ἐν ἀφθαρσίᾳ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구절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영육 모두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리라는 희구를 담고 있다.

교부들은 이 염원을 각자의 언어로 풀어냈다.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은 바오로 사도와 유사한 ‘씨앗’ 은유를 사용했다. 그는 땅에 떨어져 마르고 썩는 씨앗에서 주님의 섭리가 새 생명을 일으킨다고 말했다.(1코린 24,4-5 참조) 성 이레네오 역시 성령의 은사들이 우리를 비부패성으로 이끈다고 썼다.(「이단 논박」,V,8,1) 루카스 마태오 세코 신부가 요약했듯, 성령은 영혼과 육체 모두에 비부패성을 전해 주는 분으로 지칭되었다.
우리는 매주 미사에서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이 신앙 고백이 담고 있는 부활의 희망은 박해와 순교에 직면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절실했다. 화형대 앞의 성 폴리카르포, 썩어서 다시 피어나는 씨앗으로 영생을 노래한 바오로 사도와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성령과 비부패성을 언급한 성 이레네오. 이들이 전한 것은 결국 하나다. 바로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생명에 대한 희망이다.
그래서 헨델이 되풀이하는 “썩지 않는”과 “우리는 변화되리라”는 남다른 울림을 지닌다. 트럼펫과 베이스가 팽팽히 맞서다 마침내 한 음에서 만나는 순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넘어 생명에 이르는 승리를 노래한다. 부패할 육신은 어떻게 비부패성을 입을 수 있는가. 헨델의 노래는 그리스도교가 오래도록 천착한 물음에 음악으로 건네는 응답이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